한반도를 지켜본 산 증인 ‘자연’ 그리고 풍경화

프린트

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한반도를 지켜본 산 증인 ‘자연’ 그리고 풍경화 남북정상회담 때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 담은 미술품 선정

기사입력2018-07-09 08:07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한반도 자연을 함축하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생중계되어 많은 이들은 감동의 순간을 함께 지켜보았다.

이들이 만난 장소인 평화의 집은 만남 직전 새로운 기운을 맞이하기 위해 새 단장을 했다. 이 과정에서 평화의 집에 걸려있던 그림들은 모두 새로이 걸리게 되었는데, 교체된 작품들은 한 작품을 제외하고 산을 비롯한 자연을 그린 풍경화였다. 교체 과정에서 분명 단색화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그림들이 고려됐을 것이나, 최종적으로 걸리게 된 작품들은 다양한 기법들로 묘사된 여러 산과 자연의 그림으로 이 작품들을 곳곳에 배치한 것을 살펴보면 이번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미술품 선정에 있어서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를 잡고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맞춰 이야기와 정성을 담아서 작품을 선정했다고 한다.

남북정상이 만난 평화의 집 1층 로비에는 민정기의 ‘북한산’이 걸렸고, 방명록에 서명하는 곳에는 김준권의 ‘산운’(사진)이 걸렸다.<출처=청와대>

1층 로비에는 민정기의 ‘북한산’이 걸렸는데 이는 서울에 있는 명산이며 이름에 북한이 들어가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명록을 서명하는 곳에는 김준권의 ‘산운’이 걸렸다. 수묵으로 표현한 안정적인 구도의 그림으로 방명록에 적힐 검은 잉크가 번져 나가듯 보인다.

접견실에는 사진가 김중만의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이 있다. 이것은 김응현이 쓴 훈민정음 글씨에서 ㄱ과 ㅁ의 색을 다르게 해 이번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정면으로는 박대성의 백두산 ‘장백폭포’와 제주도의 ‘일출봉’을 함께 전시해 한반도의 끝과 끝에 있는 자연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리고 2층 회담장에는 신장식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 있다. 회담장 입구에는 유일한 여류 미술가인 이숙자의 ‘청맥,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엉겅퀴’가 걸렸다. 그리고 3층 연회장 바깥에는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이남의 겸재 정선의 그림을 재해석한 ‘고전회화 해피니스’와 모두 함께 밤하늘의 보름달을 땅으로 내려와 옮기는 장면을 연출한 ‘평화의 길목’을 걸었고, 내부에는 신태수의 푸른 서해를 그린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있다(‘미리 보는 남북정상회담’⑩한반도 산천이 판문점 회담장에 들어오다, 뉴스핌).

이처럼 자연은 남북한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이자, 산과 바다 모두 다르지 않으며 같은 한글이라는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해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현재 시점에서 서로의 관심사를 중심에 두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작품을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풍경화의 해석

현대미술 사조에서 풍경화가 조명을 받은 시점은 19세기 영국에서 새로운 풍경화가 등장했을 때다. 당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으로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풍경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과 윌리엄 터너(J.M.W. Turner)가 이를 대표하는 미술가인데, 후대에 터너가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더 알려졌으며 프랑스의 인상파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터너의 풍경화가 보여주는 특징들을 찾아보면, 지형학적인 특징에 충실하되 본인의 경험을 빛과 색을 비롯한 여러 회화적 기법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나아가 픽처레스크(picturesque)적인 연출된 자연을 그렸다. 이는 당시 자연을 선호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찾던 영국인들이지만, 결국은 자연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그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터너의 작품특징으로는 숭고미를 꼽을 수 있다. 터너는 대자연의 위대함과 무한함, 인간이 이를 거스를 수 없다는 한없는, 불분명한 이미지를 자연 재해와 같은 그림 혹은 광활한 바다와 높은 산, 협곡으로 표현했다. 자연을 순진한 대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통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터너는 풍경화를 통해 당시 영국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연에 대한 정서를 대변했다(‘산업혁명기 영국의 풍경화와 풍경이론:터너의 풍경화’, 마순영, 인간, 환경, 미래,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2008.12.).

접견실에는 사진가 김중만의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이 있다. 이것은 김응현이 쓴 훈민정음 글씨에서 ㄱ과 ㅁ의 색을 다르게 해 이번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작품이다.<출처=청와대>

이러한 풍경화의 다양한 해석은 여전히 오늘날에 그려지는 풍경화의 의미를 찾게 해 준다. 평화의 집에 걸린 작품들 역시 이와 유사한 점들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다. 가장 많이 노출된 민정기와 신장식의 산을 그린 작품과 이이남의 작품은 미술가가 재해석한, 의도가 돋보이는 픽처레스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숙자의 끝없는 들판과 김준권의 아스라이 퍼져나가는 듯한 흑백 산의 구름들과 신태수의 맑고 너르게 펼쳐진 서해를 그린 작품들은 자연의 숭고미가 돋보인다. 그리고 박대성의 작품은 수묵화 기법으로 표현되어 산수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다.

평화의 집에 걸려 있는 작품들의 조합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분위기와 다르게 무게감 있고 중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우리의 지난 역사와 만약 통일이 된다면 다시 써야 하는 한국 미술사를 고민해 본다면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노선에서 정치적으로 선택된 풍경들로 보인다.

역사의 증인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그림을 그린다. 자기의 모습을 앞에 두면 외계의 완고하고 생경함은 사라지고 사물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했다. 여전히 우리는 삶 속에서 자연을 경험하고 있기에 모든 이들은 자연에 대한 친숙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전히 우리가 찾아가서 휴식, 관광, 혹은 탐구해야할 가치가 있기도 하다. 자연을 그린 풍경화들은 우리 삶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가 분단된지 70년이 흘렀다. 분단의 세월이 길다고 하면 길게 느껴지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더 긴 시간이 그 배후에 있기도 하다. 70년 동안 한반도에서 같이 살던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또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지켜본 산 증인은 바로 자연이다.

앞으로 남북의 관계가 어떠한 상황으로 변화할지 예측하거나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미래에도 아마 자연은 그 자리에서 피고 지고 자라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또 다른 사람의 눈과 손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계속해서 표현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모습이자 곧 우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