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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정 회장 일가가 사랑하는 숫자…‘29.99’

재벌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시행령을 개정해서라도 뿌리뽑아라  

기사입력2018-07-10 18:2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2017년 현대차그룹과 광고회사인 이노션 간 거래액은 2407억원이다. 2013년 거래액과 비교하면 74%이상 급증했다. 이노션은 현대차 정몽구 회장 일가가 29.99% 지분을 소유한 현대차그룹 계열사다. 2013년 이후 이노션 전체 매출액중 내부거래 비중은 40%대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5년부터는 50%를 초과했다. 현대차그룹의 일감몰아주기 물량도 많았지만, 이노션의 영업이익률 또한 경쟁사업자들에 비해 높았다는게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언이다. 이렇게 챙긴 돈으로 정 회장의 장남,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핵심계열사 주식을 매입했다는게 공정위의 추가설명이다. 

‘29.99’, 정 회장 일가가 유독 좋아하는 숫자다. 2015년 2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주식 지분 13.39%를 처분했다. 매각 이후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지분율은 29.99%로 떨어졌다. 정 회장 일가가 보유한 이노션 지분율과 똑같은 수치다. 정 회장 일가가 ‘29.99’란 숫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초를 제공한건 전 대통령 박근혜다.   

신봉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엘에스가 엘에스니꼬동제련에게 지시해 엘에스글로벌인코퍼레이티드를 장기간 부당지원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고, 경영진과 법인을 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사진=뉴시스>
2005년 정 회장 일가는 100% 지분을 출자해 이노션을 설립했다. 현대차가 망하지 않는한 광고물량이 끊이지 않을 터이니, 돈을 긁어모을 수 밖에 없는 알짜배기회사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지분을 100% 소유하지 않고, 29.99%만 소유한다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여기엔 사정이 있다. 정 회장 일가가 2005년 이노션을 설립해 잘먹고 잘살아가는 도중, 해도에 없었던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까지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셌다. 이듬해 8월 전 대통령 박근혜가 공정거래법을 개정, 재벌총수일가를 대상으로 한 사익편취금지규정을 신설한 배경이다. 재벌기업집단 계열사간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도 비재벌기업집단의 2.5배, 매출액의 100분의 5로 올렸다. 이노션과 글로비스를 이용해 땅짚고 헤엄치기 전략만을 구사했던 정 회장 일가 영업방식에 제동이 걸렸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여망에 따라 잠깐 주춤했지만, 정 회장 일가의 고민을 전 대통령 박근혜가 풀어줬다. 사익편취금지규정을 신설한 공정거래법이 발효되기 직전, 전 대통령 박근혜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정 회장 일가가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개정된 시행령에 따르면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중 특수관계인이 30%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비상장사 20%이상)는 계열사간 부당한 거래행위가 금지된다. 거꾸로 말하면 글로비스나 이노션에 대한 정 회장 일가의 지분이 30%미만이면, 사익편취금지규정과 관계없이 온갖 부당한 지원행위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 회장 일가가 2015년 2월6일 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한 이유도, 일주일 뒤 2월14일이면 개정법에 따라 글로비스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익편취금지규정을 피할 수 있는 글로비스 지분 29.99%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이노션의 경우에도 동일한 수법을 사용했다. 정 회장 일가가 100% 소유했던 이노션 지분은 지분매각과 2015년 7월 상장을 통해 29.99%가 됨으로써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현대차 정 회장 일가의 사연을 길게 썼지만, 다른 재벌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수법도 본질적으로 같다.  공정위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2014년 사익편취 규제 도입 이후 내부거래실태 변화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규제대상 계열사간 내부거래액은 2014년 7조9000억원에서 2017년 14조원으로 두배가까이 증가했다. 내부거래비중 역시 규제 첫해인 2014년 11.4%로 전년대비 4.3%p 줄었을뿐, 이후 증가세로 돌아서 2017년 14.1%까지 올라갔다. 

이에대해 공정위는 “제도도입시 상장사에 대해 규제범위를 차등화하고, 총수일가의 직접 지분이 없는 자회사 등은 규제범위에서 제외했으나, 실제 상장사에서 내부거래에 대한 감시·통제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자회사의 경우에도 내부거래 규모 및 비중이 상당하여 모회사의 총수일가 주주에게 간접적으로 이익이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혀 제도보완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없이 규제대상 지분율을 20%로 정함으로써 ‘29.99’란 숫자를 동원한 탈법을 막겠다는 의미다. 아울러 총수일가가 보유한 간접지분까지 규제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규제의 실효성을 제고하겠다는 뜻이다. 계열사간 부당거래를 통해 재벌총수 일가들 끼리끼리 탈세하며 부를 상속·증여하고, 경영권마저 세습하는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당연한 결단이다.   

우려되는 지점은, 늦었지만 당연한 이 결정을 공정위가 입법과제로 미룬다는 전언이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특위에서 논의중인 다른 개혁안과 함께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게 지금까지 전해지는 공정위 입장이다. 국회통과를 위해선 여야간 협상이 불가피한데, 그 과정에서 사익편취규제의 입법취지가 무색하게 될 우려가 적지 않다. 있으나마나 한 법안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야당과 협상에 앞서 정부·여당은 치밀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여야합의 입법이 안되면, 시행령을 개정해서라도 경제민주화를 위한 발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재벌기업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최소화함으써 재벌총수 몇몇에게 집중되는 경제력, 불공정한 산업생태계를 바로잡는게 경제민주화다. 재벌총수일가가 독과점한 물류업, 식자재공급업, 광고업, MRO, SI, 전문건설업 등의 일감을 중소기업시장으로 돌리는게 공정경제다.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대기업의 힘을 억제하고, 중소기업·소상공인 등 약자의 손을 잡아주는게, 기울어진 시장에서 공정위에게 부여된 책무다. 재벌에 대한 시혜 차원이었지만, 국민에게 탄핵받아 쫓겨난 전 대통령 박근혜도 했던 일이다. 70%대 국민지지율을 확보한 문재인 대통령,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을 담아 시행령을 개정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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