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의 ‘황제경영’, 집중투표제로 견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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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재벌총수의 ‘황제경영’, 집중투표제로 견제해야 집중투표제 의무기업 확대하고, 비의무기업의 청구요건은 완화

기사입력2018-08-07 08:51

조한무 기자 (chohm011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상법 개정을 앞두고 집중투표제 의무화 요구가 뜨겁다. 법무부도 지난 4월 자산 2조원이상 기업에게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 검토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대주주와 이해관계가 얽힌 이사가 감시와 견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소수주주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국회에는 집중투표 의무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다수 계류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전 김종인 의원,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개정안은 일정 규모이상 기업의 경우 임의로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대상이 아닌 기업을 대상으로 집중투표제 실시 청구요건을 낮춰, 소수주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집중투표제를 청구할 수 있는 주식보유 요건이 지나치게 높아 집중투표제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집중투표제, “사외이사제 실효성 제고” vs “헤지펀드 이사회 장악”

집중투표제는 2명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후보수만큼 찬반의결권을 부여하고, 한 후보에게 몰아서 투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가령 3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1주당 의결권은 3개이며, 1명 또는 2명의 후보에게 3표를 던질 수 있다. 소수주주라도 의결권을 집중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현행 상법에선 1주당 의결권이 한명의 후보에게 1개로 제한된다. 많은 의결권을 보유한 대주주가 문제 있는 후보를 지지해도 소수주주로선 해당후보의 이사회 입성을 저지하지 못한다. 이사회를 감시하고 소수주주를 대변하는 인물을 선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선출방식이다. 대주주 지원을 받아 선임된 이사는 당장은 자질 등에서 하자가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추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주주와 얽힌 이해관계 탓에 이사회를 견제하지 못하고, 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벌대기업의 방만·갑질 경영 사례에서 입증된다.

강릉원주대학교 안택식 교수는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방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서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상 조치는 사외이사제 도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주주를 견제하기 위한 사외이사의 선임이 실질적으로 대주주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라면서 “사외이사제가 실효성을 거둬 경영 투명성을 실현하기 위해,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사료된다”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가 경제민주화 과제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그래픽=조한무 기자> ©중기이코노미

외국투기자본의 이사회 장악이 수월해진다며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집중투표제 도입시 이사회 구성 주요기업의 시뮬레이션’ 보고서를 통해 “최근 헤지펀드는 대상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소지분만 확보하고 자기사람 1~2명을 이사회에 진출시킨다. 주요자산이나 사업을 매각하도록 해 주가를 상승시켜 차익을 취득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한경연 보고서는 이어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2012년 미국 BMC소프트웨어 지분 9%를 취득, 이사 10인중 2인을 자기사람으로 교체했다. 이를 발판으로 끈질기게 회사 매각을 요구했고, 결국 BMC소프트웨어는 2013년 사모펀드로 넘어갔다. 엘리엇은 시세차익을 얻고 떠나는 전형적인 ‘먹튀’ 사례를 보여준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경연의 ‘먹튀’ 우려는 과장돼 현실화 가능성 없어

그러나 헤지펀드가 이사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주식을 매입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한경연의 ‘먹튀’ 우려는 과장됐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헤지펀드가 매입한 한국 기업 지분율은 대개 7%를 넘지 않는다. 2003년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의 5%, 2005년 칼아이칸이 KT&G의 6.5%, 2015년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7.12%을 사들였을 뿐이다. 2003년 소버린이 SK 지분 15%를 매입해 2대주주로 올라선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헤지펀드의 성질을 고려하면 소버린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외국계 투기자본은 얼핏 하나의 집단으로 보이지만, 실제 운용주체와 국적이 다른 소액지분으로 구성된다. 투자목적 등 이해관계가 상이하기 때문에 특정 이사 후보를 한목소리로 지지할 개연성도 적다.

집중투표제 실시 청구권, 상장사 90%이상이 정관으로 배제

현행 상법에 따르면 발생주식 총수의 3%이상, 자산 2조원이상 기업의 경우 1%이상을 보유한 소수주주는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선임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업은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2016년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 733사중 93.5%에 해당하는 684개사가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했다. 상법에 보장된 집중투표제 실시 청구권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따라 집중투표제 의무화 기업이 아닌 경우, 집중투표제 실시 청구권 보장을 위해 ‘발행주식 총수 3% 보유’라는 청구요건을 완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발표한 ‘시행령 등 하위규정 개정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천 방안’ 보고서에서 “2016년기준 유가증권 상장회사 772개사중 자산 2조원이상 회사는 149개사, 5000억원이상은 336개사”라며 “집중투표실시 청구요건을 3%에서 1%로 완화하는 대상법인을 자산 2조원에서 5000억원이상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자산보유기준을 낮춰 보다 많은 기업에서 소액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집중투표실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주주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