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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사 310조 투자보따리…세상에 공짜는 없다

재벌대기업 독과점 경제구조 더이상 강화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기사입력2018-08-09 18:16
단 하루만에 희망이 가득찬 새세상이 열렸다. 어제만해도 한국경제가 당장 몰락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해가 떠 눈을 떴을 뿐인데. 나락에 빠졌던 한국경제가 한줄기 빛을 타고 비상할 태세다. 

‘삼성공화국’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씁쓸하다. 8일 삼성그룹은 2020년까지 3년간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신규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했다. 삼성에 앞서 투자계획을 밝힌 현대자동차, SK, LG, 신세계 등 4대그룹사의 향후 5년간 총투자 규모가 131조원이다. 삼성의 투자액을 연간투자금으로 환산하면 4대그룹 투자금의 2배에 달한다.

“곳간 확 열고…존재감 드러낸 이재용”(세계일보), “경쟁력·상생일자리…예상 뛰어넘은 결단”(국민일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찬가가 쏟아진다. 모 경제지는 승부수를 던진 이재용 부회장이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진다고 찬양했다(JY 승부수…반도체 격차 벌리며 한국 미래성장동력 책임진다”). 하루 전만해도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 준비없이 도입한 ‘1주52시간 노동상한제’가 한국기업을 모두 망하게 한다고 핏대를 올렸던 신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삼성이 연간 40조원씩 투자한다고 ‘가정’까지 하면서, 모 대학교수 입을 빌어 경제성장률을 0.3%p 끌어올릴 것이라 전망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하향 조정한게 엊그제다. 국책과 민간 연구기관 대다수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2%후반대로 예측했다. 이들 기관 모두가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상향해야 할 판이니, 경제성장이란거 참 쉽다는 생각이 든다. 재벌그룹 총수들에게 부탁해 돌아가면서 기자회견 한번씩만 하면, 경제성장률 5%대를 넘기는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여기서 드는 의문,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 정부가 온갖 특혜를 줘가며 이들에게 투자해달라고 사정했는데. 그땐 뭐했는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삼성을 포함 재벌대기업의 대규모 투자계획에 대해 보수언론 모두 장밋빛 전망과 함께 꼬리표를 달았다. “투자·고용 보따리 푼 기업…정부, 규제 걸림돌 치워줘야”(헤럴드경제), “대기업들의 잇단 투자계획 발표, 정부가 힘 실어줘야”(한국경제), “기업들 310조 투자보따리 풀어…규제혁신 뒷받침돼야 경제활력”(동아일보). 규제 걸림돌을 치워주고, 정부가 재벌기업에 힘도 실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꼬리표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국, 주류 경제학에선 실체조차 없다는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란 말이다. 더 이상 재벌대기업을 옥죄는 ‘공정경제’, 이런 말 하지 말란 소리다. 예전처럼 재벌대기업 주도 경제성장을 통해 파이 먼저 키우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란 얘기다. 촛불혁명으로 세운 이 나라에서 지금이 어느 때라고, 철지난 유행가를 보수언론이 또다시 트는 이유는 정부 탓이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삼성에게 구걸한다는 논란마저 자초하며, 대한민국은 여전히 ‘삼성공화국’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삼성과 현장소통 간담회를 하고자 경기도 평택 소재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 간담회를 마친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직원식당에서의 오찬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뉴시스>
재벌대기업으로부터 희생만을 강요받았던 노동자와 가계, 사상 유례없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맛본지 이제 1년이 갓 넘었을 뿐이다. 수직종속적 원하청구조 하에서 수탈의 대상이었던 중소기업, ‘공정경제’란 우군을 만난지 한해가 갔을 뿐이다. 추잡스런 행태로 벌어지는 가맹본부의 갑질을 더이상 묵인할 수 없다며, 가맹점주들이 집단행동에 나선지 이제 1년 남짓이다.   

확신하건데, 올 연말 경제성적표가 나오면, 재계 특히 보수언론은 자신들이 달아놓은 꼬리표를 흔들며 정부에 대해 온갖 저주를 쏟아부을 것이다. 성적이 낮으면 규제 탓과 함께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폐기하라고 악다구니를 부릴 것이다. 성적이 좋아도, 규제·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를 싸잡아 고성장 가도에 발목을 잡았다고 억지를 부릴게 분명하다. 

지금도 늦었지만 결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생산·분배 규칙을 정하는게 경제정책이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제로섬게임이다. 재벌대기업의 끝모를 탐욕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중소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보장해 줄 방법이란 애당초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재벌대기업의 권력을 억제해 확보한 자원을,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집중하는 정책 이외 다른 해법은 없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이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이들이 고용한 노동자 역시 저임금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최저임금 1만원’조차 버거워하는 저임금 산업구조를 바꾸지 않고,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혁신’을 주문하는게 가당하기나 한 소린가. 재벌대기업도 저임금 하청업체가 지천에 널렸는데, 편하게 외주화해서 돈벌면 그만이지, 뭣 때문에 머리 싸매고 혁신을 하나. 최저임금 1만원이 사회통념으로 자리잡지 못하면, 을과 병이 물어띁고 싸우는 왜곡된 분배구조는 더욱 고착화될 뿐이다. 

수십년이상 ‘갑중의 갑’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깨고, ‘을·병’이 함께 상생하는 공정경제를 만드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재벌대기업, 이들과 한몸인 기득권세력의 저항은 당연하고 또 불가피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라면, 국민을 신뢰하고 소통하면서 혁명에 버금가는 개혁을 연착륙시킬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적폐세력의 저항이 두려워, 가야할 길을 포기하는건 촛불혁명에 대한 배신이다. 촛불정부를 지원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셀 수 없이 많은 을과 병에게 칼을 꽂는 범죄다. 

조급한건 을과 병, 시민사회가 아니고 눈앞의 성과에 목을 매는 정부다. 재벌그룹사가 얼마를 투자하든, 그건 이윤창출을 위한 기업활동의 일환이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이들 재벌대기업이 투자를 통해 독과점 경제구조를 더이상 강화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조정해 주는 일이다. 이들 대기업 투자금이 시장에서 돌아갈 때, ‘공정경제’ 틀 속에서 생산·분배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게 정부의 책무다. 재벌대기업 투자를 통해 경제규모가 5%이상 성장해도, 중소기업이 최저생계비조차 지급하지 못했던 비정상적인 경제구조, 이제는 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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