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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합(野合)으로 태어난 공자, 인류 스승이 되기까지

기록상 관중(管仲)이 최초의 ‘상인’, 공자(孔子)는 최초의 ‘알바생’ 

기사입력2018-10-05 13:00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기원전 11세기, 고대 중국에 주(周)나라가 들어서던 때에 철기시대가 도래하고, 철기농기구와 소를 이용하면서 농업생산량이 증대돼 먹고사는데 여유가 생겼고, 이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궁리하는 인간중심의 인문학이 싹트게 됐다. 

서양에선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고 다녔던 것이나,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인간이 타고나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달아야 한다’면서 인문학의 도래를 알렸다면, 중국에서는 공자(孔子)가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인(仁)을 근간으로 하는 유가(儒家)학파를 세운게 중국 인문학의 서막을 열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를 지나 진시황제(秦始皇帝) 때 책이 불태워지고, 유학자들이 땅에 묻혀 죽음을 당하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탄압을 받은 이후, 한(漢)나라 때에 이르면 유가학파는 국가경영의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유가학파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왕조시대 지배권력의 주요 이념으로 작용했다. 

중국 산동성 곡부(曲阜)의 공자 사당에 걸린 현판.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라는 뜻이며, ‘사문재자(斯文在玆)’는 우리 문화가 여기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사진=문승용박사>
그렇다보니, 유가학파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는 지극히 존중 받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지성(至聖)’으로서, 만세토록 영원한 선생님으로 드러나신 분이라는 뜻에서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일컬어졌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에는 공자를 성인(聖人)으로 받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성인이란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서 인간에게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칭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공자를 중국 최초의 ‘알바생 출신’이라고 하는 것은 공자를 너무 비하하는게 아니냐고 여길지 모르겠다.

『논어』「자한(子罕)」편에서는 태재(太宰)가 자공(子貢)에게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신가? 어찌 그리 재주가 많으신가?(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라고 물었다. 이에 자공이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하늘이 내신 성인이며, 또 재능도 많으신 분이십니다.(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라고 대답했다, 공자가 이 대화를 듣고는 “태재가 나를 아는가! 나는 어려서 빈천하였기 때문에 미천한 일을 잘 하는 것이다.(太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공자 스스로 자신이 어려서 빈천하였기 때문에 미천한 일을 잘한다고 한 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창고지기나 목동일 등 요새 흔히 하는 말로 여러 직종에서 알바생활을 많이 하며 고되게 자랐다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관중(管仲)이 기록에 나오는 최초의 상인이라면, 공자는 최초의 알바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스승이 된 공자는 어째서 어린 시절부터 여러 직종의 알바를 해야 했을까? 공자의 전기가 실려 있는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의 탄생에 대해 “공자의 아버지 흘은 안씨 집안 딸과 비정상적으로 결합하여 공자를 낳았다.(紇與顔氏女, 野合而生孔子.)”고 했다. 여기에서 공자가 부모님의 야합(野合) 즉, 정상적인 혼인을 통하지 않은 채 맺어진 부부관계를 통해 출생했다는데, 이것이 후대에 큰 논란거리가 됐다.

공자의 아버지는 당시 60대 후반의 나이였는데, 첫번째 부인으로부터 이미 딸 아홉을 낳았고, 둘째 부인에게는 맹피(孟皮)라는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러나 아들이 신체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자의 아버지는 평소에 번듯한 아들을 하나 얻기를 갈망했다.

그리하여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안(顔)씨 집안 셋째 딸 안징재(顔徵在)를 맞아 겨우 얻은 이가 공자다. 그래서 사마천은 공자 부모가 비정상적으로 만나서 공자를 낳았다며, “야합하여 낳았다.(野合而生)”라고 한 것이다. 

사마천의 이 기록을 근거로 공자의 어머니 성씨인 안(顔)자가 ‘화장을 한 얼굴’의 뜻인 것으로 미루어, 당시 그의 집안이 무속인이었을 것이란 주장이 있다. 또 ‘야합(野合)’이 ‘들판에서 만났다’는 뜻인 만큼 당시 자연스럽게 어울려 노는 민속행사 때, 60세가 훨씬 넘은 공자의 아버지가 10대 후반의 어린 처자를 만나 혼인관계를 맺어 공자를 낳았다는 설도 있다.  

공자가 태어날 당시 공자의 배다른 첫째 누나는 나이가 쉰 살 정도였고, 막내누나도 공자의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니 공자의 아버지가 새로 나이 어린 여자를 맞아 번듯한 아들 하나 더 보겠다니 이를 반겼을리 없었을 것이다. 
       
부자동(夫子洞). 곡부(曲阜) 부근 니산(尼山)의 공자가 태어난 동굴이다. 부자(夫子)는 공자를 존중하여 일컫는 말이다.<사진=문승용박사>
여하튼 공자의 아버지는 공자가 태어난지 3년만에 사망했고, 공자가 17살 때 어머니도 생을 마감했다. 이때 공자에게는 10명이나 되는 이복동기가 있었지만, 그들의 보살핌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실제로 공자가 태어난 것도 집이 아니라 곡부(曲阜) 부근 니산(尼山)의 동굴이었던 것만 보더라도 그같은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출생에 어린시절을 어렵게 보내면서, 여러 비천한 일들을 많이 하다 보니 많은 재주를 익힐 수 있었다는게 공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공자가 비정상적으로 태어나 비천한 일들을 많이 했다는 사실이, 영원한 인류의 스승이라는 뜻의 ‘만세사표(萬世師表)’로서 공자의 면모를 깎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끝임없는 노력을 통해 세상의 스승이 된 본보기를 보였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한층 더 되새겨야 대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조선의 유학자들이 혈통의 순수성을 중시한다면서 적자와 서자를 차별했던 것이나, ‘금수저’ ‘흙수저’를 운운하면서 특정한 신분을 떠받드는 일이 우리 사회에 여전한 현실을, 저세상에서 공자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씁쓸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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