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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대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가

용역·파견직 등 질 낮은 일자리 가능성 커…재벌개혁이 먼저다 

기사입력2018-10-05 19:24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다시 ‘이윤주도성장’으로 회귀하는가? ‘소득주도성장’을 기치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6개월도 안돼 ‘고용쇼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재벌대기업 품에 안길 것인가?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최근 정부, 여당 그리고 대통령의 행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SK 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정부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도우미가 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 역할에 대한 원론적인 지적에도,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도우미의 손길이 미치는 대상이 ‘중소기업’이 아닌 ‘재벌대기업’이어서다.  

이날 일자리위원회는 미래차, 반도체·디스플레이, 사물인터넷(IoT) 가전, 에너지 신산업, 바이오·헬스 분야를 중심으로 한 ‘신산업 일자리 창출 민간 투자프로젝트 지원방안’을 의결했다. 재벌대기업이 주도하는 140여개 프로젝트에 대해 정부가 예산투입과 함께 규제완화 등 맞춤형 밀착 지원에 나선다는게 핵심이다. 

미래차 프로젝트 지원에 대해,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는 공공기관을 통한 대규모 공공구매 등을 통해서 전기차·수소차 등 신산업 신제품의 초기 시장창출을 지원하고 연구개발과 전문인력 양성까지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미래차 관련산업에 대한 연구개발과 생산, 초기시장 창출에서 육성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자동차산업 육성이란 산업정책의 당위성을 논외로 하면, 국내 자동차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현대·기아차에 대한 특혜와 다름없다.

실제 정부는 2022년까지 전기차 35만대를 목표로 전기차시장을 지금보다 5배이상 키운다고 했다. 이를 위해 올해와 내년 각각 예산 3120억원(3만1000대), 3000억원(3만3000대)을 전기차 구매보조금으로 지원한다. 또 2018년 현재 80%인 공공부문 친환경차 의무구매비율을 2020년까지 100%로 확대한다. 이외 수소차 및 수소버스 보조금 지급, 전기차·수소차 충전인프라 구축 등 미래차 관련산업에 정부예산을 직접 투입해 신규 일자리 4600개를 만든다는게 정부의 구상이다. 

결국 정부의 일자리창출 전략의 핵심은 5대 신산업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재벌대기업을 통해 2022년까지 9만200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반도체), LG전자와 삼성전자(사물인터넷 가전), 삼성바이오로직스(바이오헬스) 등 재벌대기업의 처분만 기다리겠다고 백기투항한 꼴이 됐다. 적폐청산을 위해 재벌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결기와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잊은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에 답답함을 참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SK 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정부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도우미가 돼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태원 SK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SK 하이닉스 청주공장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극단적인 수준의 ‘(재벌)대기업 주도성장’을 공언하며, 기업프렌들리의 대명사였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재벌대기업은 일자리를 늘리지 않았다. 경영효율화란 이름으로 ‘핵심’은 유지·강화하고, ‘주변’ 모두를 외주화하는 경영전략으로 ‘기업가치극대화’만을 도모했던게 이들 재벌대기업이다. 기업가치극대화 전략에는 핵심부서를 제외한 기업내 다수 노동자도 수익극대화의 수단으로 취급될 뿐이다. 해당기업과 직간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하청회사·지역사회·소비자에 대한 배려 역시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는다. 오로지 주주와 그 대리인, 총수일가의 이익만이 경영목표의 전부란 사실은 한국사회 주주 또는 천민 자본주의 역사가 증명했다. 

더욱 우려되는건 이들 재벌대기업이 기업가치극대화 경영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차원으로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신제품 기획과 디자인 등 핵심기능을 제외한 생산기능을 외주화하는 삼성의 경영전략은 애플의 그것과 동일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강력한 요구에도 애플이 ‘아메리칸 퍼스트’를 외면했듯,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호소에 삼성이 화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재벌대기업이 기업가치극대화 전략을 채택한 이후 직접고용을 회피하고, 오히려 일자리를 줄였다는 사실은 공지의 사실이니 생략하자. 그러면 이제 재벌대기업의 고용실태를 실증 데이터로 살펴보자. 고용노동부가 올 3월 발표한 고용형태 공시(2016년)에 따르면, 1000인이상 사업장 종사자(332만3000명)중 비정규직은 127만7000명(38.4%)에 이른다. 이들 비정규직중 고용의 질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용역·파견 노동자가 70만5000명(21.2%)에 달한다.

반면 300인이상 1000인미만 사업장의 용역·파견 노동자 비중은 13.0%, 1000인이상 사업장보다 8.2%p 적다. 300인이상 1000인미만 사업장의 비정규직 비율(36.4%)은 1000인이상 사업장과 2.0%p 격차를 보였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외주화가 급속히 진행돼, 고용의 질이 악화됐음을 알 수 있다. 재벌대기업이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에 부응한다고 해도, 늘어나는 일자리는 용역·파견직 등 질 낮은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틀렸다. 재벌대기업으로 하여금 기업가치극대화 전략을 포기하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들이 만들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정부의 재벌대기업 프로젝트 지원에 따라 이들의 덩치가 더 커지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 역시 더 심화될 우려도 크다. 혹여 재벌대기업 프로젝트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대중소기업 상생안을 끼워 넣었다고 자위할 요량이라면, 순진하거나 무지하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신문 경제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사가 재벌대기업의 탐욕으로 중소기업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내용이다.   

선후가 바뀌었다. 정부의 산업정책에 따라 시행되는 재벌대기업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무조건 반대하자는게 아니다. 재벌대기업 자체 판단에 따라 추진하는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살펴, 필요하다면 국민동의를 거쳐 지원할 수 있다. 정부의 지원에 앞서 재벌대기업이 ‘국민혈세’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입증했을 때,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재벌대기업이 정부지원을 받으려면, 최소한 1000조이상으로 추정되는 사내유보금을 풀어서 고통을 분담하는게 선행돼야 한다. 재벌개혁을 위한 정부의 최소한의 요구조차, 전경련·대한상의·경총을 앞세워 저항하는 지금, 재벌대기업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정부의 이번 ‘신산업 일자리 창출 민간 투자프로젝트 지원방안’ 결정은 취소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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