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에서 파쇄된 뱅크시의 소녀…미술시장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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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경매장에서 파쇄된 뱅크시의 소녀…미술시장과 돈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뱅크시…‘가격’이 최전방에 선 미술품 경매

기사입력2018-10-24 14:39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지난 10월6일 영국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그래피티 미술가인 뱅크시(Banksy)의 ‘풍선과 소녀’라는 작품이 104만 파운드(한화로 15억4000만원)에 낙찰된 후 망치가 내려치는 순간, 액자에 내장돼 있던 문서파쇄기가 작동해 작품의 일부가 훼손된 사건이 있었다.

뱅크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이 사건은 회자되며 큰 화젯거리가 됐다. 아마도 그 동영상을 본 일반인들에게는 한 점의 미술품이기보다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돈이 파쇄된 것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이 등장했을 것이다.

◇소더비에 등장한 뱅크시=이 사건은 뱅크시가 본인이 직접 기획한 일이라며, SNS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경위를 기록한 동영상을 업로딩하며 일단 마무리 지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뱅크시와 소더비가 합작한 일일 것이다”를 비롯해, 수많은 뒷말들이 오가고 있다.

뱅크시는 영국의 브리스톨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활동하다 유명해진 미술가다. 그는 대부분 건물 소유주의 허락 없이 그림을 그리는, 사실 불법을 행하는 미술가라 본명도 정체도 밝히지 않고 있다. 뱅크시는 주로 지배계층에 저항하는 내용의 자극적인 소재의 그림들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로움까지 더해 유명인사가 됐다.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하던 당시 영국에서는 국가에서 예술지원금을 줄이고, 기업에 이를 떠맡기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대형 컬렉터였던 찰스 사치의 후원을 받아 성공한 이들이 ‘yBa’라 불리는 데미안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마크퀸이다. 젊은 미술가를 위한 국가 지원금의 부재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은 이들은 마약, 범죄, 도박, 섹스와 같은 자극적인 소재로 영국의 미술시장을 확대시켰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을 구입한 사치는 경매를 통해 고가에 되팔아 이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뱅크시 작품<출처=셔터스톡>

뱅크시의 미술활동은 이러한 미술시장에 대한 반작용인 듯, 도시의 모습들을 조롱하고 유희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자본주의는 뱅크시가 조롱하는 소재 중 하나다. 그는 이번 퍼포먼스 이외에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2013년 뉴욕 센트럴파크에 노천 매대를 깔고 노인을 고용해 자신의 그림을 60달러에 판매한 일도 그중 하나다. 6시간 동안 대략 8점이 팔렸었고 심지어 첫 번째 고객에게는 2점을 주었다. 그러나 뱅크시가 자신의 그림을 지금 센트럴파크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공표함과 동시에 판매를 철수했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던 뉴욕의 여러 컬렉터들은 택시 안에서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미술품의 가치 모색=미술품은 자신 스스로의 고유한 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상품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미술품에 내재하는 두 가지 상반되는 관점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돼 왔다. 이의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미술품 경매다.

최근 미술품 경매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술품 경매의 장점은 미술품이 지닌 환금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즉, 가격을 앞세워 미술품에 누구나 관심을 갖고 접근을 하게 하기에 전체 미술시장의 확장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미술품이란, 자본의 힘에 절대적으로 좌우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다. 물론 미술가와 돈은 오랜 공생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미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 신념이다. 그것의 판단 잣대에 상품성이 주가 되어 개입한다면 작가의 작품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소장품의 경제성만을 앞세운다면 컬렉터에게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타난다.

경매장 이외에 갤러리나 아트페어에서 전시된 그림을 볼 때 가격이 표기된 경우도 있지만, 작품의 정보만 존재하고 가격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뱅크시 작품<출처=셔터스톡>

단순히 싸다, 비싸다의 가격이 지닌 값어치를 넘어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을 감상하며 자신 스스로 혹은 딜러와의 대화를 통해 그림의 구입 결정까지 당위성을 완성해 간다. 그 당위성을 완성케 하는 것은 작품이 지닌 미적인 요소가 우선이며, 그 밖에도 작가의 글과 이력이, 유명 평론가의 글이 컬렉터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작품을 구매한 대부분의 컬렉터들은 자신의 집에 그 그림을 두고 자신의 선택에, 그리고 그림의 미적 가치에 보다 더 만족을 한다.

그러나 미술품 경매에는 그림을 구매하기까지의 나름 인문학적 소양을 무시하고 가격이 최전방에 서있다. 물론 고가에 낙찰되려면 작품의 여러 이력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경제적 가치로 바로 치환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경매의 진행 과정도, 이와 관련된 보도는 대부분 가격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이유다.

◇자율성(Autonomy)=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을 이야기하며 경제의 논리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돈의 힘을 넘어선 미술가와 컬렉터들의 자발적인 의지도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오늘날 yBa로 선정된 미술가들은 과거 대학졸업 후 예술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찰스 사치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컬렉터인 찰스 사치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앤디 워홀과 같은 미국의 팝아트 작품을 주로 구매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데미안 허스트를 만난 이후 영국 미술을 후원하기로 결심하고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구입해 주었고, 그 결과 당시의 젊은이들을 오늘의 위상으로 키워낼 수 있었다. 오늘날 영국 미술의 위치가 단순히 경매에서의 가격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그들의 역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미술가와 컬렉터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경매의 숫자들이 아니다. 미술시장에서 돈은 그들 미술가의 자율성을 존중받기 위해서만 작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