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親재벌행정, 골목상권을 사지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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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정부의 親재벌행정, 골목상권을 사지로 몰았다 전국 100여개 복합쇼핑몰의 ‘상권영향평가서’ 전면 재조사해야

기사입력2018-10-30 17:57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신세계 고양복합쇼핑몰(스타필드 고양점)은 거주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주민편의시설로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기인하는 구매욕구 충족은 물론, 외부지역 수요 흡수를 통한 지역내 유동인구 및 유입인구 확대에 기여가 가능함. 이러한 기여는 지역내 고용창출, 소비활성화로 이어져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역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됨.”

29일 산업통상자원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공개한 스타필드 고양점 상권영향평가서(상권평가서) 결론이다. 이 상권평가서는 2017년 8월 스타필드 고양점 개점에 앞서 사업주체인 신세계그룹이 고양시장에게 제출했다. 이 상권평가서 결론 중 고용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 등 계량가능한 지표만 살펴보면, 상권평가서가 거짓이거나 심하게 과장됐음을 알 수 있다.

스타필드 고양점 출점 이후 주변 소상공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소상공인진흥공단, 2017.11.)를 인용한 우원식 의원에 따르면 10명중 6명이상(66%)은 매출이 감소했다. 감소폭도 커 평균 매출감소율은 평균 31%에 달했다. 매출감소에 따라 고객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64%, 평균 31%의 고객감소율을 보였다.

작년 8월24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스타필드고양에서 열린 오픈식에서 정용진(왼쪽 일곱번째) 신세계그룹 부회장, 최성(왼쪽 여덟번째) 고양 시장, 우영택(왼쪽 여섯번째) 고양시의회 부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스타필드 고양점보다 먼저, 2016년 9월 개장한 스타필드 하남 주변의 상가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파급력 큰 복합쇼핑몰:내몰림효과와 빨대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필드 하남 근거리상권에서는 ‘내몰림효과’가 발생했다. 복합쇼핑몰 인근에 터를 잡고 생계를 유지했던 기존 소상공인들이 내몰리고,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점 등 고급화 점포들이 새롭게 입점했다. 동시에 복합쇼핑몰은 5㎞이상 떨어진 원거리상권까지 흡수하는 ‘빨대효과’를 보여, 원거리상권 침체현상도 나타났다. 스타필드 하남 출점으로 근거리상권의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원거리상권 또한 타격을 받았다.

신세계그룹의 일자리 창출 약속도 이행되지 않았다. 우원식 의원에 따르면 스타필드 하남점은 당초 7000명 고용계획을 밝혔음에도 4753명 채용에 그쳤다. 그마저도 신세계가 직접 고용한 인력은 비정규직 129명을 포함해 502명에 불과했다. 사무직에 취업한 하남시민은 전무하고, 아웃소싱 회사에 계약직 등으로 캐셔나 환경미화원, 주차요원, 물류수송원 등 질낮은 일자리가 대부분이라는게 우 의원 주장이다.

골목상권을 파괴하면서 고용창출 효과도 미미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도 역시 크지 않은 복합쇼핑몰 출점이 계속되는 이유가 뭔가. 지역사회와의 상생에는 관심조차 없는 유통재벌의 탐욕 탓이란 진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복합쇼핑몰 입지 주변의 부동산가격을 올려는 투기세력 요구를 수용 또는 최소한 묵인하는 지방정부 그리고 감독권한을 가진 중앙정부의 태만이 더해진 결과다.

복합쇼핑몰 한곳이 출점하면 반경 15㎞이내 도로상권을 포함 골목상권이 초토화되기 때문에, 흔히 복합쇼핑몰을 공룡에 비유한다. 이에 정부는 복합쇼핑몰 사업자에게 출점에 앞서 유통산업발전법 제8조에 정한 상권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해당지역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제출하도록 했다. 복합쇼핑몰이 주변 상권 및 생활환경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분석, 이를 바탕으로 지역상권과의 상생방안을 마련하라는게 입법취지다.

문제는 전통시장 등 전통상업보존구역 이외 지역에서 상권평가서가 거짓 또는 부실하게 작성돼도 지자체장에게 아무런 제재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스타필드 하남점 상권보고서 내용은 스타필드 고양점의 그것과 사실상 동일하다. 하남점·고양점의 상권평가서는 지명과 숫자 등이 다를 뿐, 거의 동일한 내용과 문구, 형식을 빌려 지역상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전혀 기술하지 않았다.

특히 복합쇼핑몰 개점에 따라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외식업·의류·패션업 등 중복업종의 피해는 전혀 분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존상권과의 상권 및 상품의 중복이 적다’는 거짓말을 덧붙여 복합쇼핑몰 개점이 지역발전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죽하면 우원식 의원이 상권평가서를 ‘추진결의문’같은 보고서라고 비꼬았겠는가.

산업통상자원부 시행규칙(상권평가서의 작성기준 및 방법)에 따르면 스타필드 하남점·고양점의 상권평가서는 재작성 등 시정명령을 받아야만했다. 산업부 시행규칙에 따라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모두 고려해 객관적·종합적으로 작성해야 함에도, 이들 상권평가서가 부정적 영향을 아예 누락해서다. 또 상권평가서에 포함된 수치와 평가내용은 출처와 산출·평가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함에도, 이들 상권평가서는 복합쇼핑몰 도입의 필요성만을 주장할뿐 기존 상권의 침해 정도에 관한 분석을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산업부 국감을 통해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여서 무분별한 복합쇼핑몰 입점을 막기 어렵다’는 정부와 지자체의 변명은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산업부가 행정규칙이 정한대로 신세계그룹이 제출한 상권평가서만 제대로 검토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면 골목상권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또 고양시와 하남시가 산자부 시행규칙을 이유로 보정·보완 요구를 했다면, 하남시민 단 1명도 사무직에 채용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김동연 부총리가 8일 경기 하남시 스타필드하남을 방문, 신세계그룹과 현장소통 간담회를 가졌다. 김 부총리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과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신세계그룹은 이미 고양점·하남점·코엑스점 등 3곳의 복합쇼핑몰을 운영중이고, 전국 11개 지역에 스타필드점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신세계를 포함 롯데·현대 등 유통대기업이 운영하고, 유통산업발전법이 정한 복합쇼핑몰은 전국에 100여개다. 지금까지 복합쇼핑몰 입점을 둘러싸고, 사업주체와 주변상권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복합쇼핑몰 출점이 저지된 사례를 극히 드물다. 산업부와 지자체의 親유통재벌 행정관행이 100여개에 이르는 골목상권을 사지로 몰았다.

복합쇼핑몰 출점을 위해 신세계그룹이 사용한 편법을 롯데·현대 또한 배우고, 사용했으리라 추정하는건 합리적 의심이다. 이런 이유로 이미 영업중인 100여개 복합쇼핑몰의 상권평가서를 모두 공개하고, 산업부 시행규칙에 따라 적정하게 작성됐는지 전수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조사결과 허위 또는 거짓으로 작성된 상권평가서에 근거해 복합쇼핑몰 출점이 이뤄졌다면, 그에 따른 제재를 가하는건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아울러 상권평가서가 법에 따라 작성되지 않았음에도, 복합쇼핑몰 출점 등록을 받아준 산업부와 지자체 담당자에 대한 문책도 필수다. 법률이 권한을 부여했음에도 그에 따른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담당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부당한 행정은 향후에서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권평가서 실효성 확보 방안을 포함 복합쇼핑몰 출점 규제 등의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위해 정부·국회의 가시적인 조치를 당부한다. 그에 앞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100여개 복합쇼핑몰의 상권평가서 전부를 재조사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