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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용균 죽음으로 좀 안전해졌지만, 여전히…

기억해라! 세상이 그나마 좋아졌다면, 그건 죽임을 당한 이들 덕분 

기사입력2019-01-23 17:07
김준모 객원 기자 (gubtree@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2016년 5월1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열차에 치였습니다. 먹지 못한 사발면을 유품으로 남긴 그의 나이는 19살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97개 지하철역의 스크린도어 보수를 맡은 외주업체 직원이 모두 10명뿐이었으니, 2인1조로 작업해야하는 안전수칙은 그저 문서로만 있는 수칙이었겠지요. 

2018년 12월11일, 태안발전소에서 혼자 낙탄을 정리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빨려들어 갔습니다. 24살에서 나이를 멈춘 노동자 김용균도 끼니를 때우던 사발면 세개를 유품으로 남겼다지요. 고용노동부가 태안발전소를 특별점검한 결과 적발된 산업안전법 위반행위가 1000건을 넘었다고 하더군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5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416 합창단원이 흘린 눈물이 피켓 위로 흐르고 있다.<사진=뉴시스>
2년6개월 전 구의역이나 2년6개월 후의 태안발전소나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노동은 싼 값에 부릴 수 있는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아니,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오래 전부터 위험하고 힘든 일은 힘없고 약한 이들의 몫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바뀌지 않은 현실입니다.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에 공감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위험성이 매우 높은 작업에 대해 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합니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김용균법’이라 부르며, 다시는 제2의 김용균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약속도 했습니다. 사람이 죽거나 다쳐 여론이 들끓으면, 법을 만들고 제도개선을 약속하며 여론을 달래는 익숙한 모습이 반복됩니다. 

2014년 2월에 서울 송파구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세모녀가 자살한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정치권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해 ‘세모녀법’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도 증평에서 40대 엄마와 어린 딸이, 남원에서 70대 노부와 30대 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또다른 ‘세모녀’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1급 장애인 최옥란이 자살했던 때는 2001년 2월입니다.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몇푼 안되는 노점상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최 씨의 수급권을 박탈했습니다. 장애로 의료급여가 절실했던 노점상 최옥란은 세상을 향한 마지막 목소리와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고 말았습니다. 2001년에도 최옥란의 죽음으로 여론이 들끓자, 법을 개정해 제도개선을 한다고 했었습니다.

사람이 죽거나 다쳐 여론이 들끓으면 법을 만들어 제도개선을 약속하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법이 만들어지고 제도가 개선되었다는데도 비슷한 죽음과 참사가 이어지는 모습도 오랫동안 반복된 익숙한 모습입니다. 하도 익숙한 모습이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좀 더 나아지려고 법을 바꾸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변화를 더디게 하려고 법을 바꾸는 것 같기도 합니다.

법과 제도는 경계선입니다. 여기까지만 보장하겠다는 한계이기도 하고,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야한다는 강제이기도 한 것이 법과 제도입니다. 한계의 가혹함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허용되는 한계를 넓혀왔고, 너무 허술한 강제를 드러내는 사건들이 강제의 그물을 촘촘하게 만들었습니다.

최옥란, 송파 세모녀, 증평 모녀, 남원 부자…. 안타까운 죽음들이 한계를 넓힙니다. 구의역과 태안발전소에서의 참혹한 죽음들이 그물을 좁힙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그들 덕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고 조금은 안전해집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안타깝고 참혹한 죽음들에 빚지고 살아갑니다.

이제는 흔해진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과 유모차에 탄 아기까지 편하게 이용합니다. 돌아보면 16년 전 철로를 점거한 장애인들이 경찰에게 끌려가며 이동권 보장을 부르짖지 않았다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지금처럼 흔히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여기까지가 한계라며 그어놓은 선을 넘는 이들이 없었다면 한계는 넓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 가파른 계단에 설치된 장애인 리프트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리프트 철거와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승객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승객들은 시위 때문에 열차가 늦게 운행된다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김용균이다”고 외치며 거리를 행진합니다. 구의역을 출발해 청와대까지 수많은 김용균이 행진합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잘하는 편이니 자중하라고 훈수를 두기도 하고, 먹고살기 힘든 것이 시위대 탓인 냥 힐난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그건 선을 넘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하지만 선을 넘은 사람들이 어렵게 넓힌 한계는 허망하게 다시 좁혀지기도 합니다. 법과 제도가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허술한 법집행이 애써 바꾼 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법을 만들기 위해 선을 넘고, 법을 지키게 하기위해 선을 넘으며, 끊임없이 선을 넘어야만 한계가 넓어지고 강제의 그물이 촘촘해집니다.

너무 가혹한 한계와 너무 허술한 강제 속에서 안타깝고 참혹하게 죽어간 이들은 우리들의 이웃입니다. 하지만 고통을 줄이고 안전을 높이기 위해 선을 넘는 그들을 외면하고, 충고하거나 힐난까지 한다면 우리들은 그들의 이웃이 아닙니다. 사회가 만든 견고한 경계, 선 안에 갇혀서 죽어간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 함께 한 걸음으로 선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우리는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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