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면옥’논란, 제2의 청계천·노량진시장되나

프린트

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을지면옥’논란, 제2의 청계천·노량진시장되나 땅주인과 시공사만 배불리는 재개발사업은 중단해야

기사입력2019-01-24 19:42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 겨울에 때 아닌 ‘을지면옥’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서울 중구에서 낡고 허름한 간판과 함께 30년이상 영업한,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에 따라 철거위기에 놓인 오래된 가게들 중심에 을지면옥이 있다. ‘수요미식회’ 평양냉면 맛집으로 소개됐던 노포(老鋪, 오래된 가게)를 살려야한다는 여론이 들끓자, 서울시는 23일 이 노포를 보존하는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지 사업추진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을 연말까지 중단하고 을지면옥과 양미옥, 공구상가 등 오래된 가게를 보존하기로 했다. 시는 현재 진행 중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을 재검토하고, 올 연말까지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한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을지면옥 모습.<사진=뉴시스>

도심전통산업이 밀집된 중구 세운상가 일대는 전후, 한국 산업화·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충무로 인쇄골목, 중구 가구조명상가, 종로 주얼리, 동대문 의류상가·문방구 등 세운상가 일대의 제조·유통 산업시설들은 영세화됐고, 낡고 오래돼 도시의 흉물 취급을 받는 처지다. 그럼에도 이곳은 기술장인과 전통상인 그리고 소상공인이 함께 어우러져, 각각 특성있는 산업공동체를 꾸려가는 공간이다. 을지면옥과 같은 오랜 가게들은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면서 그 곳에서 살아남은 경우다.

서울시는 임시상가 우선공급, 사업완료 후 상가 재입주, 우선분양권 제공 등 전통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술을 매개로 인근 지역상권과 촘촘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이들에게, 다른 상가를 제공한다거나 새 건물 입주권을 준다는 게 대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공사로 청계천 상인들이 쫓겨 간 가든파이브는 ‘청계천 상인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란 명목으로 거대한 건물을 지어 상인들을 실내로 밀어넣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협과 상인 간 물리적 갈등, 법적다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가락몰로의 이전을 둘러싸고 집회·시회 및 폭력사태까지 불러왔던, 가락시장청과상인과 농수산식품공사 간 2년여에 걸친 갈등이 봉합됐는지도 의문이다.

역사라기에는 너무 짧지만, 35년 역사의 을지면옥이 사라지면 우리에게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공간이 남기는 할까. 우리 옛 삶의 풍경은 ‘그 때 그 시절’ 이라는 테마로 박물관에 박제되는 신세가 될 듯하다. 100년이상 전통을 가진 가게들이 흔한 일본이나, 베토벤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에서 여전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부러운 이유다. 높은 빌딩, 으리으리한 건물들은 이미 서울에 충분하다. 서울시가 연말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한다니 기대하겠다. 소상공인들을 내몰고 땅주인과 시공사만 배불리는 현대화가 아닌,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삶의 공간을 만들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