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해체, 분배를 망친 정경유착을 청산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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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재벌해체, 분배를 망친 정경유착을 청산하는 길 장기적 저성장기조로 악화되는 분배격차, 재벌해체 기회로 삼아야

기사입력2019-01-28 14:18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올해부터 경제가 성장을 버리고 분배로 나아가는 결단은 일개 정권을 넘는 국가적 요구다. 이는 국민이 궐기했던 3년 전 촛불항쟁의 취지를 경제에서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70년대를 기점으로 반세기 동안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경제기조는 성장이었다. 성장의 중심에 재벌과 그 체제의 발전이 있었다. 재벌이 초법적인 불법행위를 자행하거나, 이에 맞선 노동자의 저항을 폭력으로 저지한 재벌범죄에 대해서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줬다. 군사독재정권 또는 민간민주정권 큰 차이없이 재벌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권력이 항상 존재했기 때문이다.

재벌체제가 뿌리내린 정경유착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해,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평범한 시민들의 절박한 요구가 바로 개인 간 공평한 분배의 달성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재벌개혁이고, 재벌개혁의 가장 유력한 수단은 재벌해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개혁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재벌해체라는 말은 꺼내기조차 힘든 아주 급진적인 방안으로 백안시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신년사에서 재벌개혁이란 말을 꺼냈지만, 올해의 신년사 겸 기자간담회에서는 그 말조차 사라졌다. 이는 재벌이 갖고 있는 투자와 그것의 성장효과를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예전 정권과 다름없이 재벌대기업 주도 성장론을 답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5월10일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그룹간 정책간담회가 열린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한 10대그룹 경영진이 기념촬영을 하는 도중 금속노조 조합원이 ‘재벌갑질 총수구속’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벌개혁의 선봉에 서야하는 공정거래위원회도 대통령이 연두부터 개혁의 칼을 버린 이상, 이제 개혁이라는 말도 꺼내기 힘들게 됐다, 지난해 공정위가 재벌개혁 과제를 일부 수용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개정안 통과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6.19 재벌개혁안을 발표할 때만 해도 국민 대다수는 기대를 걸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와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을 주요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함께 집중투표 의무화·다중대표소송 도입·전자투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동시에 발의했다. 그러나 재벌은 재산권 침해 소지, 주주권 평등 침해 우려 등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시대적 과제라는 명분을 갖고 공정위가 최소한으로 제안했던 6.19 개혁안조차 입법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공정위는 재벌의 자발적인 개혁만을 바라보고 만족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어느 정권이든 성장의 엔진을 끄지 않고, 성장의 틈바구니를 뚫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행복을 주는 분배의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재벌개혁의 강력한 수단으로 제안된 것인 동시에 분배를 국가정책 기조로 돌릴 획기적인 기회를 갖고자 하는 것이 재벌해체다.

재벌해체를 위해 우선 재벌에 대한 규정과 함께 재벌해체가 주로 무엇을 겨냥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재벌(財閥)이란 원래 일본제국의 전통에서 육성된 독점자본가다. 서구에서는 이와 비슷한 독점자본가를 콘체른(Konzern)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재벌이 이름 그대로 Chaebol로 표기돼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박정희정권 때 급속히 성장했던 경제주역으로 재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벌해체(Disintegration)란 재벌에게 그간 독점권력을 부여해 온 수십개의 독과점기업들을 재벌로부터 독립시키는 조치다. 다시 말해 재벌 산하 계열기업들에서 계열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내 일반기업으로 전화시키고, 국내외 다른 동종기업들과 평등하게 경쟁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재벌해체란 모든 기업들이 재벌의 지배로부터 독립해 영업하는 게 기본적인 골격이다. 여기서 재벌의 지위는 기업에 대한 자신의 주식지분만을 보유하고 처분하며 배당금을 수령할 수 있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소유와 경영에 간섭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전문적인 영리법인이 된다. 기업은 시장경쟁에 순응해야 하고 정부의 규제도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기업의 재벌로부터의 해방을 ‘기업민주주의’로 부를 수 있다.

물론 어떤 경제든 분배의 몫을 키우는 성장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정쟁의 주원인은 성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국민에게 퍼주기식 분배만을 추구했던 과거 극좌정부의 정책실패와 그에 따른 경제난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행의 잠정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000달러를 넘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분류한 5030그룹(인구 5000만명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이상)에 진입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7번째 선진 경제대국인 셈이다.

세계 7위의 성장력을 구비한 한국이 재벌을 해체하더라도 그것의 잠재성장력은 크게 변할 수는 없다. 지금 세계경기가 둔화됨으로써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6%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한국의 경제사정은 수년간 하향기조로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경제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분배진작 전략을 추진할 좋은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더구나 올해부터는 개인의 소득과 지출은 더욱 나빠질 것이기 때문에 개인 간 분배격차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감안해 재벌 전체를 일거에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10개의 대형 재벌을 우선적으로 해체해야 한다. 물론 10대 재벌을 선정하는 기준은 종래처럼 형식적인 자산규모가 아니라 실질적인 이윤 크기를 기본으로 한다.

이에 따라 재벌의 이윤인 사내유보금이 2017년 말 현재 비상장기업을 포함해 10조원이상의 이윤을 낸 10대재벌이 해체의 대상이다. 그들은 삼성(269조원), 현대자동차(135조원), SK (98조원), LG (55조원), 롯데(57조원), 포스코(52조원), GS (25조원), 한국화약(22조원), 현대중공업(28조원), 그리고 신세계(12조원)다. 나아가 정부는 10대재벌은 물론이고 추가로 해체해야 하는 재벌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재벌해체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