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자본에 전통상권 붕괴…지역경제도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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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소상공인 외부 자본에 전통상권 붕괴…지역경제도 추락 지방 소도시 골목까지 장악한 대형마트…“대책없이 지켜만 볼 뿐”

기사입력2019-02-13 11:45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의 명절

①설 앞둔 대도시, 대형 커피점만 북적인다

②대목, 풍성…이제는 옛말, 명성 잃은 재래시장

③농촌에서도 명절엔 줄 잇는 대형마트 행렬

경남에 위치한 밀양시. 부산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그래서 일까. 6·25전쟁을 전후해 남하한 이주민 영향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기도 했다. 그만큼 상업적 교류도 활발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날 좀 보소”란 신명나는 음률로 시작하는 ‘밀양아리랑’, 한여름에도 차디찬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 나라의 큰 일이 있으면 땀을 흘린다는 이른바 땀 흘리는 비석인 ‘표충비’ 등 볼거리 충만한 충절의 고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구 10만명 선을 간신히 유지하는 변방의 소규모 도시다.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인구 감소추세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나마 지방 거점 도시마저 팽창성이 강화돼, 인근 소규모 자치단체는 소멸을 우려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설명절을 앞둔 밀양시 하남읍 수산 5일장. 인근에 대형 마트들이 들어서며 상권의 누수현상이 심각하다. ©중기이코노미

수산 5일장 중심으로 반경 600여m 내 중·대형마트만 4곳

밀양시내권을 제외하고는 인구가 가장 많은 하남읍. 이곳의 전통 상권은 3일과 8일 서는 5일장이다. 주변에 우포늪으로 잘 알려진 창녕과 단감으로 유명한 진영이 있어, 장이 서는 날은 제법 많은 장돌림이 모인다. 5일장에 맞춰 몰린 평소 왕래가 드물던 면 주민까지 더해지면, 장터 주변은 규모가 있는 상권이 형성된다. 밀양에서 손꼽히는 인구밀집지역이라지만 1만명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마트는 고사하고 편의점도 드물었다. 이 같은 지역적 특성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는 5일장과 골목상권도 공생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이곳 풍경은 달라졌다. 1990년대 후반 농촌의 대표 브랜드인 농협 A마트가 대형화 추세에 불을 댕기더니, 2000년 후반부터 곳곳에 다소 규모가 큰 매장이 속속 들어섰다. 수산 5일장을 축으로 형성된 상권을 중심으로 반경 600여m 내에 중·대형 마트만 4곳에 이른다. 여기에 최근 골목까지 편의점이 차고 들어왔다. 이 여파로 기존 상권은 심각한 누수현상을 겪고 있다.

수산 5일장을 축으로 형성된 상권을 중심으로 반경 600여m 내에 중대형 마트만 4곳에 이른다. ©중기이코노미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는 대도시급 규모의 매장과 함께 공룡매장으로 불리는 D잡화점까지 문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대형매장 입점 기준인구를 10만여명으로 보면, 7천600여명(2019년 2월 내국인 기준·밀양시 홈페이지)인구가 거주하는 읍 단위 시장에 매머드급 매장 입점은 사실상 기존 상권 말살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비자 누수에 상권 고사, 5일장은 도깨비 시장 수준

설을 3일 앞둔 지난 3일. 이날은 5일 전통시장이자 설 대목장이 열리는 날이다. 수산시외버스정류장에 5분 정도 걸으면 5일장에 도착한다. 설 대목과 맞물려 분잡했다. 시장에서 30년 넘도록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 명절 대목이면 평소보다 2~3배가량 사람들이 더 찾는단다. 김씨는 “평소 5일장은 거의 사람이 안 찾아오는데, 명절 대목이라 그나마 오는 것이지 장사에 큰 도움이 될 만큼 많이 오는 것은 아니다”면서 “근처 식당들도 손님이 몰리는 오전에 잠깐 문을 열고 오후에는 거의 장사를 안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곳 파시시간은 점심시간 전후다. 기자가 찾은 10시부터 11시가 조금 넘자 어수선하던 시장은 조금씩 정리가 돼갔다. 5일장에 맞춰 보따릴 푼 장돌림들이 철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산시장만 30년째 찾고 있다는 서모씨는 “옛날에는 생필품까지 더해 오토바이에 10가지 물건을 가지고 다녔다”라며 “요즘에는 수입산 농산물 몇 개만 가져와 팔고 있다. 뜨리미(떨이)해봐야 수중에 남는 돈은 2~3만원에 불과하다”고 하소연 했다.

빈자리가 없는 대형마트 주차장…전통상권,“대책이 없다”

전통시장이 거의 마무리 된 오후 1시경. 대형마트 밀집지역(?)으로 향했다. 걸어서 10여분 만에 도착한 농협 A마트. 왕복 2차선 지방도는 이미 차량들로 막혀 있었으며, 이를 통제하는 민간단체 회원들도 정신없었다. 이곳을 지나 불과 5분가량 더 가니 3층건물 높이의 대형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매장 앞에 마련된 주차장은 100여대의 자동차로 이미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짐을 한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다니는 소비자 모습은 도시와 큰 차이가 없었었다. 판매되는 물건 역시 도시 대형매장과 비슷했다.

수산은 딸기, 깻잎 감자 등 농업이 주요 업종이다. 변화된 소비패턴이 대세라 해도, 대형매장 입점에 따른 자본외부 유출에 지역 소상인뿐 아니라 농민들도 한숨만 쉬고 있다.

수산에서 농산물 판매점을 하고 있는 민모씨는 “여기에 산업단지가 들어서 외국인노동자가 많이 들어왔다. 여기에 맞춰 대형매장과 전문햄버거점까지 들어섰다. 전부 외부 자본”이라며 “손님도 거의 줄었는데 지역에서 번 돈이 지역에서 돌지도 않고 외부로 나간다. 상인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은 아무 대책도 못 세우고 지켜만 보고 있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