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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결권 도입…모기를 잡기위해 칼 빼는 꼴

‘벤처기업 붐’을 위해 필요한 조치는 차등의결권이 아닌 경제민주화 

기사입력2019-02-12 18:39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 잡자고 칼을 뺀 격이다.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으로 보수·극우 정당 및 언론은 물론 소상공인·자영업자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했던 집권여당이다. 무능과 무대책을 동반한 정책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지는 못할망정, 또다시 수렁으로 자신을 끌고가는 꼴이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혁신기술을 지닌 벤처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차등의결권은 혁신기술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는 사다리가 될 것”이라며 “창업 붐이 이어질 수 있도록 자본시장의 구조와 관행을 혁신 친화적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차등의결권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2019년 입법 및 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本末顚倒(본말전도)는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좋게 말해도 처음과 끝이 뒤바뀌었다는 뜻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뒤죽박죽이다. 과거 10년간 집권경험을 가진 여당의 정책브레인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 보기에는 너무 옹색하다. 거리는 오가는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 물어봐라.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면 벤처기업이 우후주순처럼 치솟고, 쑥쑥 자라 대한민국 경제의 활로를 열어줄 수 있냐고. 

차등의결권은 ‘1주 1표’의 의결권을 가진 보통주 이외 ‘1주 2표’ 또는 ‘1주 10표’ 등 다수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허용하는 제도다. 소자본으로 창업·영업 중인 기업의 경영권이 ‘1주 1표’ 원칙에 따라 대자본에게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反시장적 규제다. 또 차등의결권은 창업주 등 특정 주주의 권리를 확대하는 반면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일반 주주의 권리를 제한하는 예외적인 조치다. 따라서 차등의결권 도입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비용(反시장적 규제·일반주주 권리제한)보다 편익(창업자의 경영권 보호)이 커야만 한다.  

그런데 보자.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차등의결권 도입 이후 ‘벤처기업 창업 붐’이 일고,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는 성장사다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다수의결권·경영권을 보장하지 않아, 한국사회에서 벤처기업이 성장을 못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과문해서 조 정책위의장에게 묻는다. 한국에서 벤처기업 창업주가 공격적 M&A 대상이 돼 문제가 됐던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만약 확인된 사례가 없거나 그 숫자가 미미하다면, 벤처기업에 대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려는 속내를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수직·종속적 원하청구조가 고착화된 한국에서 차등의결권은 벤처기업 창업을 촉발하고 성장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2017년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중소벤처기업부, 2018.1)’에 따르면 기업부설연구소를 보유한 중소기업의 14.3%는 거래기업(대기업)으로부터 중요한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정부가 최근 기술유출 피해 예방 및 지원 사업을 강화하고 있음에도, 기술유출 범죄는 2012년 448건에서 2016년 528건으로 17.9% 증가했다.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차등의결권 부재가 아니다. 기술탈취 이외 단가후려치기를 포함 재벌대기업의 관행화된 갑질이 근절되지 않으면, ‘벤처기업 붐’은 애당초 불가능한 그림이다. 차등의결권 도입을 주장하는 재벌대기업과 보수·극우 언론 및 야당은 페이스북과 구글을 거론한다. 한국과 달리 벤처기업 창업이 활성화된 미국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도둑질해 성장한 사례가 있었던가. 특허청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기술유출로 인한 손해배상액이 평균 65억7000만원인 반면 우리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은 평균 6000만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대기업에게 6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받은 중소기업, 열에 아홉은 대기업의 보복으로 폐업했을 것이다.      

백번을 양보해 차등의결권 도입에 따라 소수의 벤처기업 창업자의 경영권은 지킬 수 있다고 치다. 그렇더라도 현행 법제도 하에서 차등의결권 도입은 벤처기업 창업자 일가의 일감몰아주기 행태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아울러 투자자 및 주주의 이익, 나아가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창업자의 사익을 법으로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다분하다. 무엇보다 재벌대기업 총수일가 모두가 벤처기업을 창업해,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재산과 경영권을 대대손손 독점하는 편법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가 크다. 집권여당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려는 속셈이 여기에 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은 그래서 타당하다.   

차등의결권 도입, 필요하다면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차등의결권 도입은 그에 따른 편익보다 비용이 너무 크다. 지금 시점에서 ‘벤처기업 붐’을 만들고,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차등의결권 도입이 아닌 경제민주화다. 재벌대기업 편향의 시장을 바로잡아 공정경제 환경이 조성됐을 때, 그 때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 벤처기업·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수평·대등한 원하청구조 정착이 선행된 이후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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