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의식 버려야, 경영권은 세습가능한 재산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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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오너’ 의식 버려야, 경영권은 세습가능한 재산권 아냐 공정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을 함께 정비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기사입력2019-03-05 19:09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5일 ‘공정경제 실현을 위한 입법과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중기이코노미

‘공정경제’ 실현의 전제는 기업의 소유·지배 구조개선이다. 기업의 소유·지배 구조개선을 위해 공정거래법, 상법, 금융그룹감독법 등 3개 법안을 연계해 정비해야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5일 개최한 ‘공정경제 실현을 위한 입법과제 정책토론회’에서 법무법인 한누리 서정 변호사는 ‘공정경제 실현을 위한 입법과제-기업지배구조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발표에서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이 많으면 주주, 채권자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에 대한 권리보호가 잘 이뤄져 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며, 일자리 창출과 세수증대 등을 통해 국민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안착된다”고 강조했다.

서 변호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평가한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은 11개국 중 8위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는 호주를 포함한 12개국 중 9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홍콩·일본은 물론 대만·태국·말레이시아·인도보다 후순위다. 특히 기업지배구조 문화(CG culture), 관련 규정 및 관행(CG rules & practices), 법집행(Enforcement) 분야가 미진한 것으로 평가됐다.

경영권을 세습 가능한 재산권으로 잘못 인식하는 게 문제

서 변호사는 ‘오너’라는 인식을 낙후된 지배구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회사 지분으로 보면 총수일가는 오너가 될 수 없다. 2018년 기준 52개 기업집단 총수(일가)의 평균 지분율은 2%(4%), 10대 기업집단은 0.8%(2.5%)에 불과하다. 권리·의무 관계에 따른 법적 기준에도 불구하고, 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잔존해 기형적인 기업지배구조가 형성됐다는 게 서 변호사 분석이다.

오너의 ‘경영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2003년 대법원은 경영권은 경영상 의사결정의 자유, 즉 경영판단의 재량을 의미할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재벌기업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세습 가능한 재산권으로 잘못 인식한다는 게 문제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경영진이 잘못하면 주주들이 지분을 매각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경영진 또한 주주들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높다. 경영진의 잘못으로 주가가 하락하면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는 등 무능·부도덕한 경영진에 대한 자본시장의 응징과 위협이 상존한다. 주주들의 요구를 경영진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자본시장이 발달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경영진의 불법행위조차도 자본시장의 응징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임직원의 무능·부도덕에 대한 총수 차원의 응징 메커니즘은 존재하지만, 총수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주주들이 시정을 요구할 메커니즘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주주들이 지분을 팔고 나가는 것이 경영진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 주주들이 요구를 하는 경우도 드물고,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는다. 권한은 마음껏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이른바 ‘황제경영’이 가능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사외이사·감사위원회 제도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

서 변호사는 지배구조의 근간이 되는 회사법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지배구조 낙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우리나라의 회사법은 한국적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영미의 제도를 무작정 도입해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예컨대, 감시와 견제의 수단으로 도입된 사외이사제, 감사위원회제 등은 오히려 총수의 지위를 보좌하거나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또 증거개시제 부재 등으로 검찰이나 공정위 등 국가기관이 개입하지 않는 한, 소액주주가 단독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게 불가능한다. 증거개시제란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검사에게 공소제기 된 사건에 관한 서류 등을 열람·등사 또는 교부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회사법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형법이나 공정거래법이 대신하는 사법의 공법화 현상도 나타난다. 업무상 배임죄의 확대, 사익편취에 대한 공정위의 집행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사법이 공법화되면, 형법에서 특히 강한 ‘위하(억제)효과’가 발동해 경영자율성이 침해되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선 경영진이 정당한 경영활동임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으로 적극적인 경영판단을 저해하는 역효과도 나타난다.

다수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조정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는 것이 좋은 기업지배구조다. 이와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자를 경영진으로 선임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배제하는 시스템이 한국사회에 없다는 게 서 변호사의 견해다. 또 우수한 경영진을 확보하려는 제도적 노력없이, 막연히 유전적 행운에 기대하는 경향은 한국 기업지배구조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다. 이외에도 부정하고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배제 시스템 또한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자본시장 순기능 활용하되, 법제도 개선을 통해 환경 조성해야

서 변호사는 이해관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업지배구조 생태계를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구축하기 위해, 1차적으로는 자본시장의 순기능과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법의 정비를 통해 좋은 기업지배구조 생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변호사는 상법상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통해 주주들의 목소리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법의 기업집단법제 개정 방향으로 ▲사익편취 규제 적용대상 확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규제 ▲지주회사제도 개편 ▲순환출자규제 개편 ▲금융보험사 의결권제한제도 개편 ▲기업집단 지정제도 개편 ▲해외계열사 공시 강화 ▲벤처지주회사 활성화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와함께 현재 모범규준을 통해 시범 운영되는 금융그룹감독제의 조속한 정착을 위해 제도의 법적인 근거를 갖추는 것도 또한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그룹감독법’의 제정과 시행을 통해 대기업집단이 부실화돼도 금융그룹이 동반부실해지는 것을 예방하고, 금융소비자가 안심하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