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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졸속 매각…정몽준 외 모두가 피해자

시민사회…勞·使·民 공평하게 고통 분담할 구조조정 방안 찾아야  

기사입력2019-03-09 00:3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독과점이 엄격히 제한되는 시장이다. 조선분야 세계 1, 2위 업체가 통합해 경쟁력이 강화되고, 시너지효과가 난다는 주장은 모순이다. 경쟁력이란 경쟁사를 전제로 한 상대적인 개념이다. 세계 3, 4위 업체가 업을 포기할 요량이 아니라면, 절대강자 둘이 야합해 시장을 독점하려는 시도를 묵인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시너지효과 또한 극히 제한적이거나 없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주력선박은 초대형 원유 운반선(VL탱커)과 1만5000TEU급 이상 컨테이너선, LNG선으로 동일하다. 일방에 없거나 부족한 것을 타방이 보유했거나 채워 줄 수 없다면, 시너지효과가 발생해도 극히 제한적이다. 주력선박이 동일하다면 시너지효과보다, 합병 이후 생존을 위해서라도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수순이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현대중공업과 KDB산업은행의 본계약 체결식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렸다. KDB산업은행 최대현(왼쪽부터) 기업금융부문 부행장, 이동걸 회장, 현대중공업지주 권오갑 부회장, 현대중공업 가삼현 대표이사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민영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양사간 합병을 강행했다. 8일 대우조선 지분 인수(양도) 계약서에 서명한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은 공동발표문을 통해 ▲대우조선의 자율경영체제 유지 ▲대우조선 노동자의 고용안정 약속 ▲대우조선 협력업체 및 부품업체의 기존 거래선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공동발표문은 합병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양사 노조를 포함 노동계와 경남지역 주민을 다독이는 내용이다. 그러나 발표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으면, 현대중공업의 속내를 알 수 없다. 자율경영에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협력업체를 그대로 유지할거라면, 현금 4000억원을 포함 2조원가까이 투자해 대우조선을 인수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공동발표문을 통해 약속한 내용엔 모두 꼬리표가 달렸다. 거기엔 향후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답이 담겼다. 고용안정을 약속했지만, 그 앞에 ‘생산성이 유지되는 한’이란 단서를 달았다. 주력선박이 같다면 설계·연구 분야 핵심인력, 지원부서 인력을 줄이지 않고는 통합 전과 동일한 생산성을 유지할 수 방법이 없다. 노조와 경남지역 주민의 반발이란 소나기를 잠시 피하는 꼼수를 부렸다. 향후 언제라도 생산성 부진을 명분으로 대우조선 노동자를 자르겠다는 게 현대중공업의 속셈이다. 

협력업체와 부품업체의 기존 거래선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약속에도 ‘대외 경쟁력이 있는’이란 전제를 달았다. 대우조선은 선박제조 과정에서 협력업체가 제조·납품하는 엔진을 사용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자체 제작한 엔진을 사용한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의 엔진 생산능력 대비 가동률은 50% 수준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우조선에 납품되는 엔진 물량은 현대중공업이 포기할 수 없는 먹잇감이란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대우조선에 엔진을 납품하는 HSD엔진·STX엔진·STX중공업 등 3사 노조는 “대우조선 매각은 엔진 3사와 거제, 창원을 포함한 경남의 1300여개 협력업체의 도산과 조선산업 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이유다. 엔진분야 이외 부품 및 기자재 업체가 고사되는 것 또한 시간문제다. 통합 이후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라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제품의 균질·규격화는 불가피하다. 거제에서 공급했던 부품 및 기자재 역시 울산업체로 넘어간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대우조선은 적게는 7조원 많게는 1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국민기업’이다. 그리고 대우조선은 더 이상 부실기업도 아니다. 2년 연속 7000억원이상의 흑자를 기록한 알짜배기 회사다. 올해 목표 수주액도 83억7000만달러, 지난해 목표 73억달러보다 14.6% 높다. 국민혈세를 들여 부실을 털어내고 도약하려는 지금,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했다. 헐값매각, 재벌특혜란 비난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서 새삼 헐값·재벌특혜 논란을 되짚지 않겠다. 이미 도장까지 찍었다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이번 인수합병 과정에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중앙 정치권을 보면 화가 치민다. 대우조선 노사와 경남지역 주민의 절절한 목소리를 이처럼 외면한 정치권, 이들에게 정치를 하는 진짜 이유를 묻지 않을 없다. 시민사회의 낮은 역량과 조직력 또한 아쉽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부당성을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인수합병 반대투쟁은 대우조선 노동자와 경남지역 주민 등 이해당사자만의 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이 목청 높여 싸우며 요구했던 지역경제 회복과 고용안정, 특단의 사정변경이 없다면 이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손에 달렸다. 8일 본계약 이후 예정된 실사과정 등 추후 절차에서 공동발표문에 숨은 꼬리표를 제거하는 게 현실적인 선택지가 됐다. 이 또한 대우조선 노사와 경남지역 주민 모두가,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저항해야만 이룰 수 있는 목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에게 당부한다. 버스가 떠난 지금 합병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 단 한가지도 묻지 않겠다. 대신 대우조선 정상화를 위해 수년이상 임금동결, 명예퇴직 등 고통분담을 기꺼이 감내했던 대우조선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길 바란다.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전국에서 실업률이 제일 높은 거제와 통영 시민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길 당부한다. 지엠대우 군산공장과 인천공장, 이제 대우조선 거제공장이 무너졌다. 앞으로도 계속될 제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계와 노동자 그리고 지역주민 모두가 공평하게 고통을 분담하도록 하는 방법, 우리 시민사회에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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