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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스튜어드십 코드 확대하고, 안착방안 마련해야

재벌 총수 및 대주주의 전횡 방지, 국민과 기업 모두에게 유익하다 

기사입력2019-03-29 19:00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자신에 대한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되면서,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아버지 조중훈 회장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이어 받은 지 20년 만이다. 오너 일가나 대주주를 핵심 자리에 앉히는 통과의례가 된 주총에서, 외부의 힘에 의해 연임안이 부결된 것은 우리 경제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박탈이 결정되며 총회가 끝난 뒤 총회 의장인 우기홍 대표이사가 총회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부분의 기업 주총은 대주주의 의도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돼 왔다. 1998년 당시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삼성전자 주총에서 경영진과 장시간 설전을 벌이는 등 소액주주운동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오너 리스크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책임을 직접 물었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이변이 가능했던 건 대한항공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힘입은 바 크다. 외국 기관투자자와 시민단체 역시 연임 반대에 힘을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 성과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결정은 2018년에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것이다.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가 적극적으로 투자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해 주주와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게 스튜어드십 코드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에도 자본시장법상 임원의 선임·해임과 같이 ‘경영참여’와 관련한 주주제안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했다. 

기업과 오너의 패행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될 때마다 대주주 지위를 가진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계속됐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기업의 자율활동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경영참여’ 사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소극적 입장을 유지했다. 대한항공의 이번 주총 성과물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온갖 ‘갑질’과 스튜어드십 코드의 본래 취지를 되살리려는 국민의 요구가 맞물리면서 나왔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포악질은 일명 ‘땅콩 회항’ 이후에도 끝없이 터져 나왔다. 세 자녀와 부인, 조양호 회장의 악행과 비리는 하루가 멀다않고 뉴스 전면을 장식했다. 대한항공의 로고인 태극마크가 부끄러우니 떼어달라는 청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공분과 다르게 사법적 단죄는 무디고 느렸다,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말자는 불매운동도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번 대한항공의 주총의 연임안 부결이 조양호 회장 일가에게 가장 두려웠던 회초리인 셈이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을 계기로 국내 기관투자자 모두 의결권 행사 범위를 보다 확대해야한다. 국민연금만 보더라도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모아놓은 쌈짓돈을 대한항공에 투자한 것이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악행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면, 대주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 전횡을 막는 것은 국민을 위한 일이고 기업을 지키는 일이다.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아직 스튜어드십 코드는 걸음마 수준이다. 벌써부터 보수언론은 ‘연금사회주의’라는 자극적인 언어로 조 회장의 낙마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도 거들고 나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권한을 축소하도록 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의 주장은 상식 밖이다. 서민들에게 크지않은 돈을 대출해주는 은행도 담보 등 온갖 안전장치를 요구한다. 국민의 쌈짓돈으로 수천억을 투자한 기업의 악행과 비리를 묵인·방조하라는 게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의 주장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묻지마’ 투자로 국민혈세 수십조원을 자원외교로 날리지 않았는가. 투자한 만큼 감시하고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일, 기업과 국민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가 국민과 기업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야한다. 기관투자자의 결정이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이왕 걸음마를 떤 것. 제대로 잘 다듬어서 기업의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우리 경제에 안착시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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