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벗어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委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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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정치 벗어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委 돼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나타난 변화와 과제

기사입력2019-04-02 19: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난해 7월30일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한 후, 처음 맞은 2018년 12월 결산법인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지난달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는 총수일가의 갑질파문과 횡령·배임 의혹 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되면서, 재벌총수가 회사 주인인 주주의 선택으로 사내이사 선임이 부결되는 첫 사례로 기록됐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첫 주주총회 시즌을 거치면서 다양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났으나, 한편으로는 보완하고 개선돼야 할 과제를 남겼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2일 ‘연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평가와 전망’ 토론회를 개최했다 ©중기이코노미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센터 센터장은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일 개최한 ‘연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평가와 전망’ 토론회에서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후 첫 주주총회, 평가와 과제’ 발제를 통해, “2019년 주주총회에서는 주주제안이 증가하고 주주총회 관련 정보공개 확대로 활발한 토론을 촉발시켰으며, 상장사들의 자발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확산되는 한편, 우리의 시장이 헤지펀드의 공격적 행동주의에 대해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첫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 후 변화=올해 2월까지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30여개 자산운용사 등 90여개에 이르는데,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과 국민연금의 참여 이후로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기업과 대화하려는 시도가 늘었다. 배당수준을 높이는 등 주주총회 안건을 주주가 직접 상정하는 주주제안도 확대되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경영간섭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한다. 하지만 오히려 주주 친화적인 방향으로 경영과 지배구조를 자발적으로 개선하는 회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룹차원에서 전자투표를 시행하고 배당을 늘리며,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등의 조치도 시행되고 있다.

◇공격적인 해외 기관투자자 방어 역량 확인=한편에서는 무리한 배당을 요구하는 등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해외 기관투자자가 나타났고, 오랫동안 그룹경영을 이끈 대표이사의 연임을 주주가 막아서기도 했다.

이를 두고 경영을 위축시키는 기관투자자의 과도한 경영개입이나 국민연금을 통한 정부의 영향력 행사, 해외 헤지펀드의 부당한 공격 등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오히려 헤지펀드의 무리한 배당요구 등 공격을 방어한 한국 자본시장의 건전성과 역량이 확인됐다. 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주주들의 건전한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으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역할이 회사의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연기금의 관치 우려 없애는 구조 개선 필요=그동안 형식적이었던 국내기업의 주주총회가 보다 내실화되기 위해서는 개선도 필요하다.

송 센터장은 관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구조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결정 이후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민간전문가로 대표성있게 구성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핵심 실무조직인 책임투자팀을 수탁자 책임실로 격상해 인원을 대폭 보강했다.

송 센터장은 “조직 구성 등에서 상대적으로 관치 우려가 낮고, 주주활동을 전담하는 내부조직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수탁자 책임실이 핵심 의사결정 및 실행을 주로 하되, 복지부장관, 노사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중장기적으로 개별기업 관련 의사결정보다는 수탁자 책임 정책을 마련하고 이행을 총괄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 정부·정치권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기금 이익에만 충실한 주주활동 의사결정과 감독이 가능하도록 내부통제 등 규정을 마련해 엄격히 시행하는 것도 관치 우려를 완화시킬 방안이다.

◇상법·자본시장법 개선으로 주주총회 내실화를=주주총회를 내실화할 수 있는 상법상 법제 개선도 요구된다. 현재 3월 특정일에 주총이 집중되는 이유는 3월말 이전에 사업보고서가 제출돼야 하고 사업보고서 확정 이전에 결산, 내·외부 감사, 주총 소집공고, 주주총회 개최 등이 마무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송 센터장은 주총일을 3월말 이후에 개최할 수 있도록 개선하면, 주총 소집기간도 현행 2주이내에서 4~5주로 확대할 수 있어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늘릴 수 있고, 안건 분석과 의결권 행사를 충실히 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송 센터장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이사회 승인만으로 배당을 결정하고 사업보고서 제출 후 4, 5월에 주총 개최가 가능해 주총이 분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도개선을 통해 모든 상장회사의 사업보고서가 3월말까지 모두 공시될 경우, 이후 개최되는 주총에서는 경영진의 성과와 경쟁기업과 비교할 수 있어 배당의 적정성, 경영진의 보상·연임여부 적정성 등에 대해 충실하게 논의하고 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이와함께 주주총회에 주주의 목소리를 담는 자본시장법상 주주제안제도 개선도 제안했다. 주주제안제도는 주주가 주주총회의 목적사항 및 의안을 제안할 수 있게 함으로써 주주총회 의안 등 선정에 대한 이사회의 독점을 막고, 경영진이나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한편, 주주총회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다. 단, 주주총회에서 소수주주가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고 이와 함께 제안권 남용을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결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