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가 함께 삼양동 주민의 가족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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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父子가 함께 삼양동 주민의 가족사를 남긴다 2대가업 45년 역사, 100년 가게 될 것…서울스튜디오 나복균 대표

기사입력2019-05-03 19:25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아버지 나복균 대표에서 아들 나승보 씨로 2대째 가업이 이어지면서, 서울스튜디오는 오랜 단골손님은 물론, 그들의 자녀와 손자에 이르기까지 손님들의 가족사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중기이코노미

“얼마 전 뉴스를 보니 10년 이내에 사라질 직업 10위 안에 사진가가 들어있더군요. 제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던 45년 전만 해도 사진가는 유망직업 중 하나였는데…, 격세지감입니다.”

서울스튜디오 나복균 대표가 강북구 삼양동에 서울사진관 문을 연건 1973년이었다. 아버지 나복균 대표에서 아들 나승보 대표로 2대째 가업이 이어지면서, 서울스튜디오는 오랜 단골손님은 물론, 그들의 자녀와 손주에 이르기까지 손님들의 가족사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젊은시절 월남에서 군대생활을 했던 나복균 대표는 당시 사진촬영을 담당했던 분대장으로부터 사진관 창업을 권유받았다.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이었지만, 우리경제가 부흥기에 들어섰다. 늘어난 중산층을 중심으로 여가문화가 생기고, 사진 찍고 인화해 남기는 문화도 함께 발전했다.

나 대표는 제대 후 사진인화점 문을 열었다. 당시 단체생활을 하는 ‘여공’, ‘버스안내양’ 그리고 직장인 사이에 이벤트처럼 특별한 날에는 단체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었다. 여가시간에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 대표는 당시 사진사는 사회에서도 제법 선호하는 직업군의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총각 때 시작한 사진관으로 결혼도 하고 세 딸과 아들 하나, 식구도 늘었다.

나복균 대표가 운영하는 1층 서울스튜디오(위)와 아들 나승보씨가 같은 건물 3층에서 운영하는 설담스튜디오(아래) ©중기이코노미

나복균 대표는 여전히 전통적인 아기사진을 찍는다. 예전의 느낌대로, ‘백일기념’과 같은 문구도 직접 손글씨로 새겨 넣는다. 아기 사진을 찍는 등나무 의자는 수많은 아기들의 사진과 함께 35년을 함께 했다. ©중기이코노미

70년대 말 석유파동이 났을 때 가게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투자한 돈도 다 못 건지고 가게를 나오기도 했다.

“투자금을 일부 잃고, 사진관을 그만두고 재료유통을 해볼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능력도 있는데 왜 사진사를 그만두냐고 만류해, 다시 도전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새 출발을 했었죠.”

나 대표는 쉬지 않고 일했다고 했다. 결혼식·교회·유원지·칠순잔치 사진과 비디오 촬영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사진현상 장비도 당시 집 한채 값을 투자해 들여놨다. 빠르고 품질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사업은 순항했다.

어린시절 놀이터였던 사진관…자연스럽게 가업승계

중학생이 된 아들은 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보조 사진가 역할을 해줬다. 나승보씨는 어릴 때부터 사진관이 놀이터였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어느새 중학생이 된 아들은 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보조사진사 역할을 해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진관은 자신의 놀이터였다고 나복균 대표의 아들인 나승보 대표가 말했다. 나승보 대표는 아버지 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사진을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대학에서 사진공부를 하고 홍대나 강남 등의 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제 사업을 하려고 여러 지역을 알아보고 있던 중 마침 이 건물 3층에 자리가 생겨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아버지 사진관 일을 도우면서 제 사업도 할 수 있어 좋겠다 싶었죠.”

이들 父子는 1층과 3층에 각각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도 아버지는 인물사진, 아들은 가족사진을 전문으로 하며, 따로 또같이 활동을 한다.

“터줏대감처럼 이 동네를 지키고 있다보니, 동네사람들의 역사를 함께 담아가고 있습니다. 취업을 위해 증명사진을 찍었던 총각이 결혼사진도 이곳에서 찍고, 아이가 태어나면 돌사진·가족사진을 찍고 그 아이들이 자라 3대를 이어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죠.”

아버지 나복균 대표는 여전히 전통적인 아기사진을 찍는다. 예전의 느낌대로, ‘백일기념’과 같은 문구도 직접 손글씨로 새겨 넣는다. 아기 사진을 찍는 등나무 의자는 수많은 아기들의 사진과 함께 35년을 함께 했다.

스튜디오에서 길 하나 건너 대형마트가 들어섰을 때는 대형마트에 입점한 사진관 때문에 잠시 걱정도 했다. 그러나 마트에 입점한 사진관은 얼마 못가 문을 닫았다. 나중에 서울스튜디오에 사진을 찍으러 온 마트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트 사진관의 매출부진 이유가 바로 서울스튜디오 때문이었다. 보통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그 주변 사진관이 문을 닫지만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를 표현하는 인물사진 공산품처럼 찍어서는 안된다”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으면, 잃어버리지 않는 한 그것이 내 얼굴이 됩니다. 여권사진도 10년은 여권에 붙어 나를 표현하죠. 그래서 더 좋은 장비, 더 좋은 약품을 고집합니다. 요즘에는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카메라가 일상화돼 사진이 쉬운 일처럼 많이 인식이 되고 있지만, 인물사진은 그 사람을 담는 만큼 공산품처럼 찍어내서는 안되는 사진이죠.”

단지 역사가 오래됐다는 것만으로 지역명소가 되지는 않는다. 필름 사진의 시대가 저물고 고가로 구입했던 현상장비도 고물이 됐다. 디지털 사진을 배우지 못한 동료 사진사들은 택시기사로, 택배기사로 전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 대표는 새로운 시대가 오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사업을 재정비해왔다.

한 장을 찍더라도 고객이 만족할 만큼의 품질이 나와야 한다는 이들 부자의 고집 덕에 서울스튜디오는 입소문을 타고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사진관이 됐다. 동네에 거주하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도 사진 만큼은 꼭 서울스튜디오에서 찍어야 한다며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 이 곳에서 찍은 사진으로 지원하면 취업에 성공한다는 이용자들의 전언도 고객들이 서울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이유다.

서울스튜디오는 최근 서울시가 뽑은 시민 ‘추억이 담긴 가게’ 50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추억이 담긴 가게는 시민들의 일상과 함께 해온 보존가치가 크고 상징성이 있는 가게를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저는 일 할 만큼 일했고 이제 나이도 제법 됐으니, 예전에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제가 아들의 보조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사진 관련 제도가 바뀌면서 예전에는 여권용, 신분증용으로 구분됐던 사진규격도 이제는 하나로 통일돼 사진관들이 많이 힘들어졌죠. 자꾸만 변하는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꾸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100년, 200년 가는 가게가 될 수 있죠.”

아들 나승보 대표도 서울스튜디오를 운영하다 나중에 자녀에게 물려주는 꿈을 꾼다. 서울스튜디오가 상징적인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사진관과 함께 교육기관을 만들고 지점도 확대하는 게 나 대표의 계획이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