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자의 기록, 영업비밀 수준 보호장치 해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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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대표자의 기록, 영업비밀 수준 보호장치 해둬야 휴대폰·다이어리 ‘양날의 칼’ 될 수도…회사의 기밀과 디지털 포렌식

기사입력2019-05-13 00:30

고윤기 객원 기자 (kohyg7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로펌 고우 고윤기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협회 이사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연일 시끄럽다. 어떤 연예인은 뜬금없이 내기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서,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심지어 YG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연예인 때문에 세무조사까지 받고 있다. 마약, 성관계 등 자극적인 이슈가 인터넷과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이런 기류에 편승해, 여성가족부는 오픈 채팅방을 검열하겠다고 나섰다. 이 상황이 조금 확대되면, 전 국민에 대한 ‘영장 없는’ 감청의 시대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럼 기업은 예외일까? 최근 기업체의 대표들을 만나보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자신과 기업의 정보유출 문제다.

정말 지극히 사적인 대화가 확대돼 해석되고, 부메랑으로 날아와 내 심장에 꽂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 아니 단순히 나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 내 회사를 통째로 넘어뜨릴 수 있다는 것. 그들 사이에는, 자신들이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쌓아온 것들이 한방에 날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어떤 모임에서 한 대표가, 자신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약속과 메모를 적은 수첩 그리고 휴대폰을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걸 토대로 나중에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한다. 다른 대표가 핀잔을 준다. “그거 안 좋은 방향으로 이용되면, 대표님 큰 문제 생기는 거 아니에요?”

모임의 구성원들이 의견을 구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망설이다 한마디 거들었다. “이번 버닝썬 게이트에서 보셨듯이, 어디로 튈지는 모르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지요.”

정보라는 것은 어떤 관점으로 보고, 어떤 의도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르게 이용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기업을 하다 보면, 사적으로 혹은 공적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는 정치인도 있고, 공무원도 있다. 꼭 이해관계가 있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 혹, 지금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지만, 몇 년후에 이해관계가 생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좁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년치의 다이어리와 문자,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 정리 정돈된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소름 돋는 일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몇 년치의 다이어리와 문자,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 정리 정돈된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소름 돋는 일인가?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수준으로 보호장치를 해 놓아야 한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기업을 경영하는 처지에서 대표자가 몇 년 동안의 구형 휴대폰과 다이어리를 보관할 필요는 있다. 이 자료들은 양날의 검이다. 때에 따라서는 나에 대한 방패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내 목을 치는 검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간단하다. 나만 손이 닿는 곳에 잘 보관해 놓으면 된다. 내가 필요할 때 방패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다른 자가 나를 겨누는 검이 될 수 없도록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수준으로 보호장치를 해 놓아야 한다.

디지털 포렌식 업체, 비밀 유출하지 않는다는 보장 없어

이번 버닝썬 게이트에서 화제가 됐던 것이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것이다. 아주 단순히 말하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나 휴대폰에서 삭제된 내용을 복원하는 것이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측 증거를 복원하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 업체에 휴대폰을 맡겨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된 사실인데, 최신 기종인 갤럭시9, 아이폰X 부터는 비밀번호를 알아도 복원이 어렵다. 꽤 잘하는 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 아예 의뢰를 받지 않아서 놀랐다.

이미 휴대폰의 보안 기술력이, 디지털 포렌식 업체의 기술 수준을 추월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언제 이 기술력의 순서는 뒤바뀔지 모른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디지털 포렌식 자체에 대해 굉장히 불신하고 있다.

첫째, 디지털 포렌식을 했을 때, 모든 내용이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띄엄띄엄 복원된다. 재수 없으면, 나에게 불리한 내용만 복원될 수도 있다.

둘째, 업체가 휴대폰에 담긴 비밀을 유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번에 연예인 정준영의 카카오톡 내용이 공개된 것은, 무려 3년 전에 휴대폰 복원을 맡겼던 디지털 포렌식 업체에서 내용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그렇다면 왜 그 업체는 3년 전에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의뢰인에게 이제 더는 디지털 포렌식 업체를 소개해 주지도 않고, 포렌식을 권하지도 않는다. 의뢰인이 직접 포렌식을 해 올 경우에도, 만약 포렌식 업체에서 의뢰인의 개인 자료가 유출되더라도 우리 측 책임이 없다는 서약서를 받을 예정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번 버닝썬 게이트의 불똥으로 인해, 디지털 포렌식 산업 자체가 침몰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휴대폰은 단순한 전화가 아니다. 들고 다니는 수첩이고, 은행이자, 영업수단이고, 장난감이다. 혹시 기업인들 중에 본인의 휴대폰에 비밀번호가 걸려있지 않거나, 단순한 것이라면 바꾸기를 권한다. 그리고 누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거나, 풀어달라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알려줘서는 안 된다. 그게 설마 국가기관이나 수사기관이라 할지라도.(중기이코노미 객원=로펌 고우 고윤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