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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리스크, ‘무리한 보도’ 아닌 이재용의 침묵

진실 고백해야…가시밭 길이라도 피할 수 없다면, 갈 수밖에 없다 

기사입력2019-06-12 17:22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SBS의) 이 같은 보도로 회사와 투자자에게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경영에도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유죄심증을 굳히게 하는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

10일 SBS가 8시뉴스를 통해 지난해 5월 이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자, 삼성전자가 이를 부인하며 같은 날 밤에 내보낸 보도자료 내용의 일부다. SBS에 따르면 지난해 5월5일 ‘삼성전자 사업지원TF 회의(어린이날회의)’에서 삼성바이오 회계조작 증거인멸을 결정했고, 닷새 뒤인 5월10일 이 부회장이 주재한 ‘승지원회의’에서 관련대책이 논의됐다. 어린이날회의에는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등이 참석했고, 승지원회의에는 이들과 함께 정현호 사업지원TF 사장도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는 이날 보도자료을 통해 경영현안을 협의했던 승지원회의 개최 사실은 인정했지만, “증거인멸이나 회계 이슈를 논의한 회의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 회계조작 사건의 전개과정에 비춰보면, 삼성전자의 해명은 거짓이라고 단정하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어린이날회의 나흘전인 5월1일, 금융감독원은 특별감리 결과 적발한 회계조작 사실과 함께 예정된 제재조치를 적시한 ‘사전조치안’을 삼성바이오에 통보했다. 2017년 3월이후 1년이상 특별감리를 진행했고, 그 결과 금감원이 회계조작이란 결론을 내고 삼성바이오에 통보한 직후 승지원회의가 열렸다. 삼성 바이오·에피스 사장이 승지원회의에 가져갈 최우선 안건이 무엇이었을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금감원의 사전조치안 통보 이외 회계조작에 대한 제재처분을 결정하는 5월17일 감리위원회 심의를 앞둔 시점이었다. 관련대책 수립을 위해서도 어린이날회의는 불가피했다. 만에 하나 승지원회의에서 삼성바이오 김태한 사장이 회계조작 관련내용과 함께 감리위원회 심의 대응방안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경영현안의 경중을 간과해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태한 사장은 문책을 받아 그 자리에서 쫓겨났어야만 앞뒤가 맞는다. 

금감원의 ‘사전조치안’ 통보에 따른 ‘승지원회의’ 이후 금융위 산하 감리위·증선위 심의 과정, 서울행정법원의 가처분소송 그리고 지금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삼성 전자·바이오·에피스가 보여준 대응책 모두가 이재용 부회장의 지시 또는 묵인에 따른 것으로 단정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삼성바이오 회계장부를 조작해 4조50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뻥튀기한 사건이다. 그렇게 만든 돈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려 삼성물산을 사실상 흡수 합병했다. 삼성물산 합병에 따라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4.65%)·삼성생명 지분(19.84%)을 확보했고, 삼성그룹의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 회계조작이 불법이라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경영권을 포함 모든 게 무너진다. 삼성바이오 회계조작 은폐를 위해 증거를 인멸해야 할 가장 큰 범죄동기를 가진 자가 누구인가는 너무도 명확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라도 진실을 고백해야한다. 이미 삼성전자 재경팀과 사업지원TF 부사장 등 임직원 8명이 구속됐다. 또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현호 사업지원TF 사장도 검찰에 출두해, 17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12일 새벽 일단 귀가했다. 그러나 조사내용을 토대로 검찰이 정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한다고 전해진다. 삼성바이오 회계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 부회장에 대한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삼성전자는 언론의 ‘무리한 보도’로 삼성과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경영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라고도 했다. ‘무리한 보도’라는 삼성전자의 주장만 빼면 모두 맞는 말이다. 영국의 글로벌 브랜드 평가업체인 ‘브랜드 파이낸스’에 따르면 삼성은 브랜드 가치만 923억달러(약 100조원)에 이르고, 세계 500대 기업중 4번째로 순위가 높다. 아시아에서는 최고 순위이고, 현대자동차그룹(79위) 브랜드 가치가 178억달러(약 19조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삼성은 ‘또하나의 기업’이 아닌 ‘스페셜 원(special one)’이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삼성이 흔들린다. 언론의 ‘무리한 보도’ 때문이 아니라 이 부회장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진실을 말하는 순간, 본인 또 삼성전자를 포함 그룹사 전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을 모르지 않는다. 혹자는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고 하던데, 과장임을 감안해도 한국경제 또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한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법률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다. 누구든 그 선을 넘어 반칙을 행하면, 형벌권을 발동해 제재하는 것도 정부의 책무다.

가시밭 길 일지언정, 피할 수 없다면 갈 수밖에 없다. 설사 경제·정치·사회적 이러저런 이유로 삼성바이오 회계조작을 잠시 덮어둘 수 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영원히 피할 수는 없는 문제고, 공정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폐기하지 않은 한 그래서도 안된다. 삼성을 포함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거쳐 합당한 가치로 평가되고, 딱 그만큼의 경제권력을 행사해야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고백으로 인해 삼성의 가치 떨어지면,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정의다. 이 부회장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수용해야한다. 삼성전자를 포함 삼성이 살고, 삼성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은 이 길뿐이다.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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