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완성…기득권 잔재 청산이 선행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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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민주주의 완성…기득권 잔재 청산이 선행돼야 정치인 이외 시민 모두가 이성과 상식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기사입력2019-06-25 11:22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회 기득권층이 휘두르는 ‘갑질’ 폭력이 사라져야만 비로소 완성된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느 정도 발전했는가하는 ‘종속변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정치학계에서는 현대 민주정치의 출발점을 근대 영국의 명예혁명에서 찾는다. 1688년에 일어난 명예혁명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왕권을 바꾼 혁명이기에 ‘명예’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구 민주주의는 명예혁명에서 보듯이 ‘의회민주주의’가 지렛대다. 명예혁명 이후 유럽의 어떤 왕조도 의회(국회)를 무시하는 절대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명예혁명의 결과물인 1689년 ‘권리장전’은 유럽 대륙에서 입헌군주제(근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됐다. 이후 역사가 발전하면서 입헌군주제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움트기 시작했다. 귀족중심 의회 결정만으로는 절대 다수의 평민을 통제할 수 없는 입헌군주제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보적 민주주의가 현대적인 형태로 모습으로 드러내기까지에는 약 1세기란 시간이 필요했다. 영국 왕실에 반기를 들면서 시작된 미국의 독립전쟁, 이어진 미국 건국은 입헌군주제를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독립건국 이후 입헌군주제 중심의 근대 민주주의는 평민도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갖는 현대 민주주의로 바뀌게 된다.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인민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 최초의 국가란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미국도 완전한 의미의 공화국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번의 투쟁이 필요했는데,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내전이 그것이다. 링컨 대통령이 이끄는 북군의 승리로 미국은 형식상으로 완전한 ‘민주공화국’이 됐다. 일제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이 헌법상 국체를 민주공화국으로 정한 직접적인 이유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에 승리한 미국의 헌법 문구를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다음날인 2017년 3월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탄핵찬성 촛불집회가 열린 가운데 탄핵인용 축하의 폭죽이 터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처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게 된 계기는 미국처럼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른 결과는 아니다. 제국주의 전쟁으로 승리한 미국의 결정에 따라 남북이 분단된 채 독립을 맞은 우리는, 헌법 문서만으로 민주주의를 얻었을 뿐이다. 그 같은 역사의식조차 결여한 독재정권들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파괴하고, 반세기이상 민주정치를 시행하지 않고 민간·군부 독재정치를 폈다. 정권을 장악했던 수구적폐 세력은 무자비하고 무책임하게 국민들은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북한까지도 핑계 삼아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쌓아 지금의 기득권세력이 됐다. 그래서 우리가 심고 키우고자 하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과거 독재권력과 그에 기생한 정치·경제 세력을 응징하는 조치가 선행돼야만 한다.

민주공화국이 당면한 현실, 잠시 한국을 떠나 세계로 나가보자. 유럽과 미국을 망라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선진국들의 노력을 보면 사실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인류가 4세기에 걸친 전쟁과 혁명으로 쟁취한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 그것을 최초로 도입했던 이른바 선진제국에서조차 ‘민주주의 위기론’이 나온다. 지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적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데 오랫동안 기여해 온 국가주의와 자본주의다. 국가란 모든 나라나 지역에서 민주정치 질서의 기본단위다. 유엔에는 200여개의 영토와 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가입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수주의 내지 애국주의라고 부를 정도로 국가를 권력 또는 위력으로까지 강화하려는 선진국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통 민주주의 입장에서 볼 때, 애국주의란 정도에서 벗어나 급진적으로 우파로 기운 극우적 성향으로 분류한다.

국가 자체를 극우적으로 몰아간 사례는 과거 ‘국가사회주의’라고 당명을 정한 독일의 나치정부가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유럽에서는 자국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이민을 거부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이민을 배척하는 이유는 이민자들이 자국의 안보와 경제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극우성향은 종래 민주주의 기본 가치인 내외국인 평등주의에 반해 자국민의 이득을 중심에 두는 민족주의 경향을 강하게 띤다. 국가가 민족주의적 경향을 갖는 것을 민주주의 본질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족이든 인종이든 인간으로서 갖는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고, 모두 같은 시민으로 대우하는 정신이야 말로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기본 가치임에 틀림없다.

세계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국가주의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더욱 폐쇄적인 ‘고립주의’로 변질됐다. 고립주의 경향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정권을 잡으면서 더욱 심화됐다. 미국의 이런 극우성향은 세계 곳곳에서 비난과 도전을 받고 있다. 양식있는 세계인은 자본주의 경제가 하락하는 국면을 맞으면 민주주의 가치도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를 표명한다. 이는 곧 민주주의(정치)가 국가발전의 기본인가, 아니면 자본주의(경제)가 국가발전의 기본인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를 던진다. 자본주의 국가란 전통적으로 민주주의를 기본적인 정치제도로 채택한다. 그러나 민주정치가 자본주의 성장에 지장을 초래할 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민주주의를 차갑게 내친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의 ‘촛불집회 1주년 대회’가 열린 2017년 10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참가자들이 ‘적폐 청산’이라고 적힌 대형현수막을 펼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는 양식있는 세계인의 민주주의 인식을 존중한다. 민주주의가 상황에 따라 폭력과 좌절로 변질될 수 있다 해도, 민주시민에게는 평화와 희망을 주는 세계를 세울 역량이 있음을 우리는 믿는다. 이런 역량을 가진 세계시민들이 이성과 상식으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는 길만이 민주주의 파괴를 막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단계 더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지 여부는, 문재인 정부가 과거 독재정치의 기득권 잔재를 얼마만큼이나 말끔히 몰아낼 수 있는가에 달렸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사회에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사명과 책임, 정치인을 넘어 시민 모두에게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