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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복합쇼핑몰…경제적 약자의 숨은 노동

유지관리(maintenance) 예술…여성, 노동, 가치에 관한 논쟁적 예술㊤ 

기사입력2019-07-10 09:3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여기저기 책이 탑을 이루고 있다노트북 옆으로 펼쳐진 책들이 겹쳐서 쌓여 있다그 위로 스테이플러로 찍혀 겨우 흩어짐을 면한 문서들이 나뒹굴고 있다그리고 메모하기 위한 노트와 몇 개의 필기도구가 책상 위에 흩어져 있다이것이 지금 내가 글 쓰는 공간의 모습이다나의 공간은 무척 너저분하다그래서 간혹 아주 말끔하게 정리된 공간을 꿈꾼다누군가가 이 너저분한 공간을 정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깔끔하게 정리된 호텔그 많은 사람이 있어도 언제나 청결하게 유지되는 백화점쓰레기가 작품으로 보일 정도로 깨끗한 미술관그리고 햇살이 드는 화이트 톤의 말끔하고 미니멀한 집안이런 공간에서 글을 쓴다면 글이 훨씬 잘 써질 것 같은 느낌이다그래서 이런 말끔한 공간을 동경한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이 공간을 떠올리면 불편하다이렇게 말끔하게 유지하기 위해 숨어서 땀을 흘리고 있는 그 누군가의 알수 없는 얼굴이 동시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1973723, 예술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 1939~)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코네티컷(Connecticut)주 하트포드(Hartford)에 있는 와즈워스 아테니움 미술관(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에서 그 미술관의 안과 밖을 여덟 시간 동안 쓸고 닦았다. 그는 미술관 계단과 입구 광장을 네시간 동안 글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손으로 닦았으며, 그 후에 또다시 네 시간 동안 미술관 내부의 전시장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손으로 문질러 닦았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너무도 기이한 일이고, 한편으로는 너무도 평범한 일이다. 미술관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예술가가 작품을 전시하지 않고 미술관 내·외부를 쓸고 닦았다는 사실은 무척 기이한 풍경이지만, 미술관을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게 유지하기 위해 청소하는 것은 너무도 평범한 일이다.

 

유켈리스는 이 행위를 통해 저임금의 관리직 근로자가 가급적 대중의 눈에 띄지 않도록 행하던 유지관리(maintenance) 노동을 공개적으로 행함으로써 수면 아래에 감춰졌던 논쟁적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바로 여성, 노동, 가치에 관한 논쟁이다.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하트포드 청소:길 청소하기, 메인터넌스 인사이드’, 1973년 7월23일, 하트포트 소재의 와즈워스 아테니움 미술관.<출처=www.arte-util.org>
‘메인터넌스 아트(Maintenance Art, 유지관리 예술) 퍼포먼스라 불리는 이 작업은 말 그대로 청소였다. 여성인 유켈리스가 행한 청소는 곧바로 가사노동을 연상시켰다. 가정을 깨끗하게 하는 청소와 설거지 등의 가사노동은 대부분 여성이 도맡아서 하게 된다. 남성이 할 때도 있지만, 관습적으로 집안의 가사는 여성의 책임이며, 의무인 양 취급되곤 한다. 이러한 여성의 숨은 노동은 집안을 말끔하고 쾌적하게 한다.

 

좀 더 시야를 넓혀보자. 사람이 많은 백화점, 극장, 복합쇼핑몰 등을 말끔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곳곳에서 숨은 노동이 숨 가쁘게 움직인다.

 

마치 물 위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숨 가쁘게 발길질하는 모양새와 같다. 쾌적한 공간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숨은 노동자는 대부분 경제적 약자이며, 그들은 저임금을 받으면서 이 일을 행한다. 유지관리 노동은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배당된다.

 

그렇다면 유지관리 노동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가? 예술에서 상찬받는 가치는 예술가의 창조적 노력이 밑바탕이 되는 개발·발전(development)’의 작업(work)이지, 단순히 숨어서 수행하는 유지관리의 노동(labor)이 아니다.

 

하지만 예술을 전시하는 공간은 필수적으로 그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 및 관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많은 공간 운영자는 전시환경이 작품에 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전시공간이 무성(無性)의 중립적인 공간, 즉 진공 상태와 같은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깨끗한 공간도, 중립적 공간도 유지관리노동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예술에서 전시가 매우 중요하다면, 과연 노동의 범주에 있는 전시공간의 유지관리가 예술가의 작업의 범주에 있는 개발·발전보다는 하찮은 행위라고 할수 있는가?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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