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배상포기 주장, 순서틀리고 근거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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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강제징용 배상포기 주장, 순서틀리고 근거 부족 일본 전 총리도 국제상식에 어긋난다 하는데…손학규·홍석현은 왜

기사입력2019-09-26 17:02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일본의 수출규제 도발로 시작돼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금 요구를 한국정부가 포기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순서도 틀렸거니와 근거에도 문제가 많다.

한반도평화만들기재단이 25일 주최한 한일공동세미나에서,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한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한국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바란다”고 말했다(중앙일보 9. 26, “한국은 징용 배상 요구 않고 일본은 분명한 사과를”).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한국정부와 기업이 책임지자는 제안이다.

대신 “일본정부는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아베 총리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같은 주장을 한 적 있다. 지난 8월7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부에 “첫째 식민 불법, 둘째 배상 포기, 셋째 피해자 국내 구제선언 이렇게 3개 사항으로 구성되는 특별성명을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되, “도덕적 우위를 확보”해 대일외교를 주도하자는 설명이다.

홍석현 회장이나 손학규 대표 모두 한일관계의 국면을 전환하자는 충정에서 피력한 의견이라고 좋은 의도로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방안의 정당성이나 합리성, 일본기업에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당사자를 어떻게 설득할지 등 현실적인 난점은 모두 접어두더라도, 문제점이 많은 주장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23일 트위터에서, “아베 총리가 개인 청구권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으로 해결됐다고 밝힌 것은 상식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자료=트위터 캡쳐>

우선, 배상 요구 포기를 먼저 선언하거나 일본에 협상안으로 제시하더라도 일본이 사과하리란 보장이 없다. 수출규제를 중단하리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일단은 양국 정부가 서로의 대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 상호 합의 하에 수출규제 등 각종 조치를 중단하는 것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서로 확인하는게 가장 합당하다. 그 이후에나 어떤 협상안을 주고 받을지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대화에 응하리란 기색도 내비치지 않는데, 배상 포기 운운하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다.

둘째로, 홍석현 회장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적인 약속인 한일협정과 충돌하는 만큼 더 이상 일본을 압박하지 말고” 배상 요구를 포기하자고 했는데, 그냥 일본이 주기 싫어하니 포기하자면 모를까 한일협정과의 충돌을 근거로 들 수는 없다.

우츠노미야 겐지 전 일본 변호사연합회 회장은 지난 5일 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로 열린 한일공동심포지엄에서, 개인의 손해배상권은 국가간 협정이나 조약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2009년 9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일본 총리를 지냈다)도 23일 트위터에서, “현재의 국제인권법 사고방식은 ‘개인의 손해배상권을 국가간 협정이나 조약에 의해 소멸시킬 수 없다’가 상식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개인 청구권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으로 해결됐다고 밝힌 것은 상식이 아니다”라며, “일본 정부여, 국제 상식으로 돌아가라”로 촉구하기도 했다.

한일관계의 해법을 제언하고자 한다면, 지금은 양국 정부에 수출규제 등의 조치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할 때다. 특히 한국정부의 거듭된 요구에도 이를 무시하는 일본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강제징용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근거없이 가로막거나, 삼권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법원의 판결을 뒤집으려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상식과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