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방위비 분담금 협상, 깨지 못할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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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韓美 방위비 분담금 협상, 깨지 못할 이유 없다 반백년이상 구걸하듯 끌고 온 ‘한미혈맹’의 민낯이 드러났다

기사입력2019-11-21 16:2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꼬이기만 하면 어찌됐든 ‘문재인’ 탓이다.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불문하고 내정, 외교·통상 현안 여부를 구분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둘러싼 한미 간의 갈등은 장사꾼 출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불거진 문제다. 독립국가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수구·보수와 개혁·진보 여부를 떠나 트럼프의 무도함 먼저 꾸짖어야 한다는 게 대한민국 국민의 정서이고 상식이다.

자유한국당 108명 국회의원 모두에게 묻는다. 자신들을 선택해 국회의사당으로 보낸 유권자의 국적이 어딘지를. 대한민국인지 아니면, 미국 또는 일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발언 때문이다. 또 황교안 대표가 단식투쟁 목표로 내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요구가 황당해서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19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국방연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의원총회에서 “방위비협상이 여러 어려움에 봉착돼 있다”면서, 그 원인은 “지소미아(GSOMIA) 문제 등 우리 정부의 잘못된 외교·안보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의 말을 풀면, 아베 정부의 억지를 문재인 정부가 들어주지 않아, 미국이 한국을 압박한다는 얘기다. 한일 간의 지소미아와 한미간 방위비협상을 하나로 묶어내는 재주가 놀랍다. 나 원내대표 국적이 일본 또는 미국이 아니란 사실은 더 기이하다. 하긴 같은 당의 서열 1위 당 대표까지 나서, 지소미아를 연장할 때까지 굶겠다고 떼쓰는 세상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난항을 겪는 이유를 들여다보자. 올해 한국정부가 미국에 지급한 방위비 분담금은 1조원을 조금 넘는다. 내년에는 5조원 늘려 약 6조원을 달라는 게 미국의 협상안이다. 올해보다 450% 이상 인상된 분담금을 요구하면서, 내세우는 이유는 더 기막히다. ▲주한미군 인건비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 ▲역외훈련 비용 등에 사용하겠다고 한다. 지금껏 양국이 준수했던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어디에도, 이들 비용을 지급할 근거가 없다. 양국간 합의로 SMA를 개정하지 않으면,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고, 줘서도 안되는 이유다.

생짜를 부리는 미국, 오만방자함 또한 극에 달해 눈뜨고 봐주기도 괴롭다. 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협상대표는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이 제시한 제안들은 공정하고 공평한 부담을 하자는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었다”며 “위대한 동맹의 정신에 따라 한·미 양쪽이 서로 수용 가능한 합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협상결렬 책임이 ‘공정한 부담’을 하지 않는 한국정부에 있다는 엄포다. 양국간 ‘위대한 동맹’을 깨지 않으려면, 분담금 6조원을 지참해 협상장으로 오라는 최후통첩이다.

‘위대한’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동맹’이란 말을 하지 말던지. 미국 땅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제임스 리시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이 21일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하는 권고안을 미국 상원에 발의했다. 뒤통수 친 건 아베 정부인데, 왜 때리냐고 항의하는 한국 정부의 손발을 묶겠다는 발상이다. 대한민국의 결정에 대해 전후 사정도 모르면서,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콩 심어라 팥 심어라’ 하는 권고는 주제넘은 참견이고 월권이다.

밀려오는 자괴감에 몸서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수준의 ‘위대한 동맹’을 위해, 현 정부를 포함 역대 정부 모두가 대미관계에서 온갖 굴욕을 감내했단 말인가.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지소미아 종료 또는 연장 여부는 오로지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 그 뜻을 받아 대통령이 결정한다. 내정간섭이나 다름없는 지소미아 연장 촉구 권고안, 설사 미국 상원을 통과하더라도, 그에 따라 대통령의 판단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지소미아도 그렇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마찬가지다. 어떤 결정을 하든, 판단의 기준은 국익이다. 국가의 존엄을 세우고,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결정이어야 한다. 아베 정부를 신뢰할 수 없어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또한 깨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반백년이상 구걸하듯 끌고 온 이른바 ‘한미혈맹’의 민낯이 이미 드러난 상황이다. 협의가 아닌 일방의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의 ‘협상’이라면, 더 이상 대등한 당사자 간 협상이 아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합의 이상이어야 한다. 합의안의 내용도 납득 가능해야 하지만, 대등한 협상테이블을 만드는 게 보다 중요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국익보다 미국·일본의 심기를 먼저 살피는 자유한국당 등 수구세력과 분명하게 선을 긋고, 이들은 내쳐야만 한다. 이제라도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의 목소리를, 미국정부에 가감없이 전달하는 그런 협상을 기대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