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조 기업 배달의민족…‘라이더’의 땀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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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4.7조 기업 배달의민족…‘라이더’의 땀과 노동 극단적인 임금·고용 유연화 경영, 당장 폐기해라

기사입력2020-01-04 00:06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A는 적지 않은 자본, 150만원을 들여 오토바이를 장만해 배달플랫폼사에 취업한 배달노동자다. A는 배달 1건당 자신이 받아야 할 수수료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모른다. 회사가 매일 밤 9시 스마트폰을 통해 다음날 적용되는 배달수수료를 공개하기 때문이다. 배달수수료는 기본배달료(3000원)와 인센티브(500~2000원) 구성된다. 인센티브는 배달지역 내 배달노동자의 숫자·날씨·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A는 인센티브 책정 기준을 전혀 알지 못하고, 회사 또한 그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재갑(왼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5월17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을 방문해 김봉진 우아한형제 대표와 함께 사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시스>

A와 회사가 작성한 ‘배송대행 기본계약서’의 유효기간은 1개월이다. 계약체결 이후 1개월 이 지나면, A 의사와 무관하게 ‘해고(계약해지)’돼도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계약서에 따라 계약기간 만료 하루 전까지 회사가 A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면, 계약해지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수수료 체계가 부당하다는 생각에 A는 노동조합(라이더유니온)에 가입하고 싶지만, 계약해지 통보가 두려워 고민 중이다. 한달만에 쫓겨나면 오토바이 구입비용 150만원을 날린다는 염려, 노조가입신청서에 A가 도장을 찍지 못하는 이유다.

회사가 부담해야 할 임금과 고용, 법률이 정한 경영상 책임 대부분을 노동자에게 떠넘긴 ‘부당한 경영’ 사례다. 주문이 폭증해도 배달지역에 배달노동자가 많으면, 회사는 ‘입찰경쟁’ 방식을 통해 저가 수수수료만 지급함으로써 떼돈을 벌 수 있다. 주문량이 떨어진 경우에도, 회사는 임금과 고용 부담이 없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반면 주문량이 적어지면, 딱 그만큼 배달노동자의 호주머니는 가벼워진다. 주문량이 많아져도 배달수수료가 낮아지고, 주문량이 떨어져도 그에 따른 고통은 배달노동자가 전담한다.

회사는 폭우와 폭설 등 악조건 환경에서도 고객요구에 맞춰 제시간에 배달할 수 있다. 사고위험 등을 우려해 배당노동자가 대기하고 있지 않으면, 수수료를 찔끔 올리면 된다. 빗길·빙판도로를 운행하는 배달노동자의 안전에는 관심조차 둘 필요가 없고, 사고에 따른 책임조차 부담하지 않는다. ‘4차산업혁명시대 신산업’, ‘플랫폼노동’, ‘혁신’이란 미명 속에 감춰진 배달노동자의 고달픈 현실이다.

이처럼 임금과 고용이 극단적으로 유연화된 사례. 국내 스타트업의 대표주자인 ‘배달의민족’ 서비스기업인 ‘우아한형제들’의 경영행태다. ‘우아한형제들’이 100% 지분을 가진 ‘우아한청년들’이 운영하는 ‘배민라이더’에서 근무하는 배달노동자를 감싸고 옥죄는 거미줄이다. 게다기 이젠 그 거미줄이 더 커졌다. 최근 배달의민족이 또다른 배달플랫폼사인 요기오·배달통과 사실상 합병, 대한민국 배달플랫폼 시장을 독점해서다. 어떠한 이유로든 배민라이더의 눈 밖에 난 배달노동자는 배달플랫폼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구조가 완성됐다.

이로써 우리나라 배달노동자 대부분은 배민라이더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배민라이더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 실제 인센티브 지급 기준을 바꾸고, 3개월이었던 계약기간을 1개월 쪼갠 시점은 이들 3사 합병 전후다. 절반의 배달플랫폼 시장을 과점했던 배달의민족 경영행태, 나머지 절반을 점유했던 요기오와 배달통으로 이식되는 건 시간문제다.

배달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대가로 배달의민족은 2018년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기업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창업자 김봉진 대표는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독일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에게 배달의민족을 4조7000억원에 매각했다. 3사 합병계약이 성사됐던 그즈음, HDC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지분(61.5%) 인수하기 위해 지불한 돈이 2조101억원이다. 플랫폼 3사 합병은, 유니콘기업 수준을 넘어 배달의민족이 국내 재벌서열의 순위까지 다투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2010년 앱 출시 이후 10년도 안돼, 배달의민족이 폭풍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창업자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배달의민족이 아닌 ‘게르만민족’이란 세간의 비난에 동조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배달의민족 기업가치에 배달노동자의 땀과 노동 역시 녹아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배달의민족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임금 및 고용 유연화 정책을 폐기해야만 하는 이유다.

배달의민족을 지끔껏 키워온 배달노동자의 요구는 크지 않고 단순하다. 사용자라면 당연히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을 회사가 지라는 요구다. 지난 2일 배달의민족 라이더로 조직된 노동조합(라이더유니온)은 회사를 상대로 ▲배달수수료 책정기준 공개 ▲기본배달료 1000원 인상 ▲쪼개기 계약 폐기 ▲노조활동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단체교섭을 개시를 촉구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창업자에게 4조7000억원을 벌게 해 줬다. 이 정도 요구도 수용하지 못할 거면, 그냥 독일 가서 장사해라.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