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빠진 공허한 곳에 버려진 골목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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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대형마트 빠진 공허한 곳에 버려진 골목상권 인터넷 사업 강화 대형유통, 뒤따르던 소상공인 어떻게 하나

기사입력2020-03-12 09:34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롯데마트 ©중기이코노미

국내 유통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롯데그룹이 큰 틀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모양이다. 국내 롯데 유통매장 중 20% 가량을 올해 안으로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한 일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여기에는 롯데마트나 하이마트 뿐만 아니라 롯데백화점도 포함된다.

롯데가 유통매장 수를 축소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기업은 기존 경영방식으로는 운영에 타격을 입는다고 판단, 인터넷 사업 강화로 방향 전환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기조는 최근 들어 감지된 것은 아니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처럼 대형마트가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한 현실을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90년대 중반부터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소도시 곳곳에 대형마트 입점은 이어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었지만, 지역상권은 처절하게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화 됐다. 이후 정부 차원에서 상생을 위한 각종 방안도 모색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생 계획은 스마트폰 기술 발달이란 흐름에 맥도 못 추고, 오히려 대형마트와 골목상권 모두 전멸될 위기에 봉착했다.

‘전멸될 위기’. 이 부분에서 다시 하나를 더 생각하게 된다. 그간 골목상권을 처절하게 파괴한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형마트가 스스로 문을 닫게 됐으니, 골목상권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 아닐까.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미 영향권에 든 대부분 지역의 골목상권은 황폐화됐다. 숨을 헉헉거리며 버티던 슈퍼마켓 규모의 상점도 각개전투식으로 퍼져나가는 편의점에 허를 찔려 퇴진하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연생태계가 그렇듯 유통생태계도 ‘자연회복’이란 것이 있는 모양이다. 대형마트에 직격탄을 맞은 골목상권에 일대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정부 차원에서 내놓은 상생 정책이 틈새공략을 통해 생활형으로 변한 것이다. 대형마트 주변에 모여드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주변 상권이 맞춤형으로 변했다. 결국 대형마트 퇴출을 마냥 반길만한 일이 아니게 된 셈이다.

대형마트 주변에 모여드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주변 상권이 맞춤형으로 변했다. 대형마트 퇴출을 마냥 반길만한 일이 아니란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대형마트 입점과 관련한 기억. 약 10여년전 경기도 한 중소규모 도시에 대형마트가 입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농민단체를 비롯한 생산자들은 반발했다. 심지어 입점 주변은 사실상 허허벌판과 같은 곳이었지만 그래도 소비자들이 대거 몰려 기존 상권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그 영향은 생산자들이 고스란히 받을 것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요즘 그 지역의 풍경은 많이 변했다. 생산자들의 반발 목소리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됐다. 주변엔 상권이 제법 조성됐다. 아파트 시세도 인근과 비교해 제법 높다. 물론 기업 차원에서 이곳과 같이 경쟁력 있는 지점의 폐쇄 계획은 아직은 없을 것이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한 기존 유통시장에 큰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도 현격하게 줄었다. 이에 맞춰 주변 상권도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형마트 축소=골목상권 활성화’ 공식이 오답이 돼 버린 셈이다. 오히려 대형마트와 지역상권은 공동운명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밀접한 관계가 됐다.

그러나 유통업계는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대형마트와 지역상권의 공동운명체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스스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시작할 시점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사랑방 역할을 하던 구멍가게도, 긴 세월 지역에서 이어온 지역상권도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넘어졌다. 지역 소비자들의 호주머니 돈은 지역에서 회전되지 못하고 본사가 있는 타지로 빠져나갔다. 그나마 사회가 부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억지스럽게라도 충족하기 위해 지역상권과의 공동운명체로 묶인 이제, 대형마트는 다시 독자생존의 길을 찾고 있다. 대형마트가 빠져나간 공허한 공간에는 뒤따라 만들어진 상권만 휑하게 남을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