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예술가가 된 작가들…터커와 페르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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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죽어서 예술가가 된 작가들…터커와 페르메르 김윤아 작가의 Life is pain.ting…#28. 죽어서 작품을 남기다

기사입력2020-04-12 10:00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젊은 시절 한 때 권투선수였던 에릭 터커는 영국 북서지방 워링톤(Warrington)이라는 도시에 사는, 공사판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터커가 독학으로 공부한 미술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터커가 사는 워링톤은 옛날에 산업도시였기 때문에 공장 노동자들이 주로 주거하는 지역이었다. 그는 자기 집 좁은 거실을 작업실로 쓰면서 동네 노동자들의 삶과 밀착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삶은 그림 작품으로 표현됐다.

펍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피아노 연주하는 장면 등등이 그 때의 작업들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인한 뿌연 연기로 가득 찬 하늘 아래 동네의 빈 공터에서 크리켓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공장들이 폐업하면서 터커의 지역사회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터커는 구상화가로, 석탄가루에 쌓인 광부, 담배를 입에 물고 한 쪽 눈을 지그시 감은 여인과 같은 지역주민이 그의 그림의 가장 큰 주제였다. 터커는 유화와 수채화 작업을 했지만, 술집에서는 거의 펜과 종이로만 스케치를 했다.

에릭 터커 작품<출처=erictucker.co.uk>

터커의 작품활동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특히 미술계에서는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1970년도에 맨체스터에 있는 갤러리를 통해 두 작품을 팔았지만, 그 갤러리는 커미션만 왕창 챙기고 더 이상 터커 작품을 팔지 않았다. 막일꾼 출신으로 영국의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계급사회인 영국에서 하류층 노동자가 미술작가로 성공한다는 것은 그 시대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미술교육뿐만 아니라 정규교육 과정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작가였다.

그가 2018년 86세로 사망하기 직전, 가족들은 그의 집에서 400점이 넘는 미술작품들을 발견했다. 집안 곳곳에 미술작품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촘촘히 쌓여 있었다.

터커의 사망 후 그의 동생 토니는 터커의 작품을 홍보하려 했지만, 예상할 수 있다시피 실패했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 대안으로 터커의 생전 집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예상 밖으로 전시회를 관람하려는 인파로 집 앞에는 이틀 동안 긴 줄의 사람이 기다렸다가 그의 집에 들어설 수 있을 정도였다. 토니는 형이 살아 있었다면 크게 기뻐했을 거라고 말했다.

최근에 본 기사에 따르면, 워링톤 뮤지엄(Warrington Museum)에서 터커의 개인전이 열렸다고 한다. 터커는 평생 미술계에 발을 붙이지 못했지만, 전시회 중 벌써 런던 갤러리 두 군데서 섭외가 들어온 상태라고 한다.

생전에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작가로는 반 고흐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고흐도 동생 테오가 형 작품을 알리려고 노력했지만, 고흐 사망 1년 후 테오도 사망하게 되었고, 테오의 미망인이 테오를 이어서 고흐의 작품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터커와 달리 고흐는 작가들 사이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미술계에서 서서히 뜨게 될 때 자살하게 된 거다. 그 후 10년 후 미술계에서는 고흐가 그 시대의 대표적 작가로 남게 된다.

그 외에 사후에 뜬 제일 유명한 작가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요하네스 페르메르(Johannes Vermeer)다. 렘브란트와 같이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항상 천천히 작품을 완성시켰고, 비싼 컬러와 빛을 잘 이용한 화가로 유명하다.

‘천문학자(점성가)’, 1668, 50×45cm, 요하네스 페르메르<출처=wikioo.org>

렘브란트는 생전에 미술계에서 이미 유명했고 작품도 고가에 팔렸다. 렘브란트는 해외에도 나갔지만, 페르메르는 델프트(Delft)라는 자기 동네 밖을 나간 경험이 전혀 없다. 그는 렘브란트와 같이 다른 작가의 콜렉터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아트딜러로 생활을 겨우 이어 나갔다.

그는 델프트 밖에서는 당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페르메르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현재 그의 작품으로 판명된 것이 고작 34점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의 디테일에 매우 신경을 썼기 때문에 속도가 무척 느렸다고 한다. 페르메르는 자식을 15명을 낳고 생존한 11명의 자식을 키웠는데, 먹여 살리고 여관 운영하랴 아트딜러로 돈 벌랴 늘 시간이 없었다. 프랑스 외교관이 그의 작품을 보려고 방문했을 때 페르메르는 보여 줄 작품이 없다고 했다. 대신 옆집 빵 가게에 빵 값 대신 두 작품을 주었으니 빵 집에 가서 작품 감상하라고 일러줬다. 그리고 그 시대 유명작가와 달리 문하생도 키우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누가 그의 스승이었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이후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그는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된다. 빚더미에 올라서 1675년 여름, 장모의 집을 담보로 천냥의 사채를 빌렸으나 채 갚지 못하고 그해 12월 스트레스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부인은 옆집 빵 가게 주인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그림 두 점을 팔았다. 남은 작품들은 동네 부자가 거의 다 사가서 그림이 다른 곳으로 팔릴 기회가 없었다.

사망 후 200년 동안 그의 작품들은 미술학자들에게 꾸준히 무시되어 왔다. 그러다가 1860경 한 독일 뮤지엄 디렉터의 눈에 그의 작품이 들게 되고, 1866년 사망 200년 후 프랑스 미술평론가가 그의 작품을 종합해서 카달로그를 만들면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 70개의 작품이 카달로그에 나와 있지만, 현재 34점이 그의 작품으로 판명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