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산업, 항공·해운 외 5개업종 제외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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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기간산업, 항공·해운 외 5개업종 제외 당연하다 대한상의에 기금운용위원 추천권 부여…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격

기사입력2020-05-13 17:0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12일 국무회의는 항공·해운 2개 업종을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대상으로 지정한 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공포했다. 당초 개정안 원안에 포함됐던 기계·자동차·조선·전력·통신 5개 업종은 기간산업안정기금 수혜대상에서 일단 제외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항공·해운 2개 업종을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대상으로 지정한 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공포했다.<사진=뉴시스>

주로 재벌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40조원의 국민혈세가 들어가는 사업이다. 20대 국회 마지막까지 재벌총수에 대한 특혜를 제공한다는 비난이 거셌던 기간산업안정기금(안정기금)이다. 당장 경영위기에 봉착한 항공·해운 이외 불요불급한 5개 업종을 지원대상에 제외한 국무회의 결정을 환영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항공업(항공 운송업, 항공 운송지원 서비스업)과 해운업(해상 운송업 및 기타 해상 터미널 운영업, 수상화물 취급업)은 ‘고용총량 90% 유지’ 이행을 전제로, 경영위기를 넘어설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앞서 정부는 안정기금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 각각 1조2000억원, 1조7000억원 지원을 결정했다. 두 항공사 이외 관련 또는 협력업체에 대한 자금지원 또한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 줄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안정기금 집행과정에서, 고용총량 유지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정부의 철저한 관리도 당부한다. 하늘과 바닷길 모두가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 100% 고용을 유지하라는 조건과 비상시국에 따른 경영합리화가 충돌할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정부의 절충안 ‘고용총량 90% 유지’라는 기준이 나름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따라서 산업별 또는 상황별로 고용총량 기준 일부를 조정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제한적으로만 허용돼야한다. 국민세금을 동원한 재벌기업 지원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유지라는 우리 공동체의 목표에 부합해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항공·해운 이외 다른 업종으로 안정기금 수혜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방침도 엄격한 조건 속에서만 이행돼야한다. 재벌그룹 특정 계열사를 지원하는데 따른 사회적 비용보다 공동체가 얻는 편익이 클 때만, 안정기금 운용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12일 개정안을 설명한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의 발언에는 국민혈세 투입에 전제돼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 실종됐다.

이세훈 금융정책국장 “(항공해운 이외) 다른 기간산업은 시장상황과 자금수요들을 보면서 시기를 조정할 것”이란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7개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지원해 나간다는 방침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듣기에 따라서는 전제조건은 정부의 자의적 판단 영역이어서 요식행위이고, 모든 산업에 안정기금을 투입하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래서 또다시 강조한다.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보다 심화시키는 재벌기업 특혜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좀 더 덧붙이자면, 자동차·조선·기계·전력·통신 5개 업종의 시장상황과 자금수요는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음을 지적해둔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1분기에 이들 업종의 주력기업 대부분은 상당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도 영업실적 또한 내수침체와 글로벌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한다. 이세훈 금융정책국장이 재벌기업 지원의 전제로 언급한 ‘시장상황과 자금수요’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야한다는 얘기다.

이번 산은업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서 우려되는 대목이 또 하나 있다. 국무회의 심의과정에서 7인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심의위원회의 위원 추천권자 중 1인이었던 산업부장관을 대한상의회장으로 변경했다. 개정안 초안에는 국회상임위가 2명의 위원을 추천하고, 기재부·산업부·고용부 장관, 금융위원장, 산은회장이 각각 1명의 위원 추천권을 가졌다.

기금운용심의위는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안정기금의 운용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안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대한상의회장에게 위원 추천권을 줌으로써 재벌기업을 회원사로 가진 대한상의가 수혜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지원금액도 결정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국민의 혈세로 메워야 할 40조원의 자금이 보관된 금고의 열쇠를 기업의 손”에 맡겼다는 민주노총의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기금운용심의위의 공정한 운영을 위해서는 대한상의회장에게 위원 추천권을 줘서는 안된다. 기업 실사 등 특별한 사정으로 그럴 수 없다면, 노동계에도 위원 추천권을 부여하는 게 형평성 차원에서도 맞는다.

첨언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안정기금 운영 방침을 밝히면서 약속한, 기업정상화에 따른 이익공유 장치 마련을 위해서도 노동계의 추천 몫은 필요하다. 수혜기업이 자진해 자기 몫을 떼어 노동자와 국민에게 나눠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기금운용심의위 운용과정에서 고용총량을 점검하고, 수혜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할 최적임자 또한 노동계 추천 위원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재난으로 가장 타격을 받은 경제주체는 산업을 불문하고 영세한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다. 그리고 이들 취약한 경제주체가 고용한 노동자와 그 가족이다. 재벌대기업 편향의 시장에서 이미 나락에 빠져있던 이들을, 팬데믹은 하루하루 생존 그 자체까지 위협하는 상황까지 몰아갔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대다수 국민이 동의한 이유도 이같은 사정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버틸 체력이 있는 재벌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영세한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보다 후순위가 돼야한다. 정부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선순위와 후순위를 명확히 구분해 운용해야한다. 아울러 기금조성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운용함으로써, 코로나19 재난에 따른 고통을 경제주체 모두가 고르게 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