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공식적으로 실업자가 돼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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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작업실에서…공식적으로 실업자가 돼 버리다 김윤아 작가의 Life is pain.ting…#31. 풀타임 실업자

기사입력2020-07-12 10:00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7월 말에 있을 개인전 준비로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내 온지 몇 달째다. 올해 초에 작업실로 쓸 창고가 딸린 단독주택을 운 좋게 구해서 이사를 왔다. 작업장과 집의 거리가 단 5초 정도였고, 지내온 지 대략 6개월가량 돼 간다. 처음 염려 했던, 집과 작업장 거리가 너무 가까운 나머지 외려 게을러지지 않을까 싶던 일은 지금까지 벌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전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 때문일지도 모르나, 실상 미리 구상해 두었던 작업들이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도 하고, 과정이 길어서 딱히 쉴 틈도 없었다.

처음 인건비를 아끼겠다고 직접 만들기 시작한 프레임 만드는 일, 작업내용 때문에 만들기 시작한 각종 목공 일들로 인해 나무 재질과 특징에 관한 자료조사부터, 유튜브로 관련 동영상들을 찾아보는 일을 거의 하루 종일 달고 살았다.

덕분에 이제는 어떤 나무가 서각에 좋은지, 어떤 나무가 잘 휘는지, 어떤 나무가 결이 많은지 수입목과 국산목의 가격차이 등등을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는 여러 개의 작업들을 돌리는 일이었고, 성격 때문인지 하나의 작업이 완성된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 다른 작업을 건들지 못하곤 했는데(그래서 늘 중간 중간 드로잉으로 스케치만 해 놓고 미뤄두곤 했었다), 몇 년 전 하나의 작업이 일 년 이상 대화가 끝나지 않았고, 나는 집요하게 그 작업만을 생각했다.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었다. 그 사이 진행할 다른 작업량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뒤로 쌓여 있었던 이후로 늘 고민해 왔던 부분이었다.

설치작품 준비로 먼지가 많이 날리는 부분과 평면 작업공간을 최대한 멀리 두었고, 페인팅 작업은 작품 사이즈를 대거 줄여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을 빈 틈 없이 잘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중간 중간 모든 작업을 말려야 하는 때가 오면, 책을 펴보는 약간의 여유로움마저 갖출 수 있게 됐다.

일단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부분은 창고를 얻은 덕분이다. 그간 몇몇 레지던시 공간에서 작품활동을 하거나 이층집을 얻어 집에서 작업을 해 보는 등 여러 상황 속에서 작업을 해왔지만, 창고형 작업실이 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상당 부분을 한꺼번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단지 이러한 부분만으로도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지만, 창고 하나 보고 이곳으로 이사 온 것에 대해 나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느낌을 갖는다.

하루 종일 작업하다 나온 늦은 오후, 나는 공식적으로 실업자가 됐다.<사진=김윤아 작가>

어느 날 늦은 오후 평소처럼 식사 때를 놓치고 작업 중 갑자기 출출해져서 작업장을 나서는데, 집 현관 앞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서계셨다. 묵직한 가방은 바닥에 놓아두고 한 손으로 파일을 들고 남은 한 손으로 초인종을 연신 누르고 계셨는데, 뒤에서 “누구세요?” 물으니 아주머니는 조금 놀라서 뒤돌아 나를 향해 “아이고!” 하신다. 본의 아니게 미안해졌으나 혹시 무슨 종교단체 권유나 다른 비슷한 성가신 방문일지도 몰라서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교회일까, 신천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방문판매 같은 걸까.’ 뭐라고 대답해서 빨리 이 상황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서 맘 편히 식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짧은 순간 고민했다.

내 표정을 읽은 것일까. 아주머니는 과할 정도로 크게 웃으며, “가구조사 나왔어요. 오늘이 네 번째 방문인데 늘 집에 안 계셔서 계속 헛걸음 했네요”라고 빠르게 말했다.

순간 안도감이 몰아쳤다. “아 네, 늘 창고에 있어서요, 뭘 작성하면 될까요?” 묻고는, 네 번째 방문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얼른 집으로 들어가 음료를 내왔다.

그 때서야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옅은 회색 슬랙스에 앞과 뒤가 거의 같은 높이의 두툼한 고무 재질 굽을 가진 런닝화, (아마도 일교차가 있을 때이다 보니 여분으로 가볍게 들고 다닐 요량으로) 바람막이 점퍼가 가방에 걸쳐져 있었다.

건넨 비타 음료를 한 번에 들이키시고는 서류를 한 손으로 받치고는 볼펜을 꺼내신다. 이름, 생년월일, 결혼 여부, 자녀가 있는지 없는지, 가족관계, 주소 등등을 확인하고, 전세인지 월세인지 본인 집인지 주거형태를 확인하고 내가 대답을 할 때마다 바쁘게 볼펜으로 적거나, 브이 체크를 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대답만 하고 있는 상황이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아주머니의 속기가 갑자기 딱 한번 멈칫 했다. “직업은 뭐죠?”라고 물었고, “작가예요”라고 대답한 순간이었다.

아주머니가 잠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다시 보았기 때문에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러다 마치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창고 쪽을 바라보시면서 “아! 저기서 작업하시는구나!”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어서 묻는다.

“개인사업자 있으세요?”

“아뇨.”

아주머니는 대답을 듣자 바로 펜을 움직이지 않고 “그럼 실업자로 체크해야 해요”라고 말했고, 나를 또 한 번 바라봤다. 나는 그 순간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개인사업자 없는 예술가 분들은 카테고리가 따로 체크할 부분이 없어요. 가구조사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이게…,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다시 파일을 손에 올리고 볼펜을 들어 실업자란에 브이 체크를 했다. 그 후 들고 오신 가방을 뒤적거려 오천원 짜리 상품권을 꺼내어 건네주시고는 “이건 가구조사 마친 가정에게 나라에서 주는 거라 상품권 수령하셨다고 요기 밑에다가 사인해주셔야 해요.”

처음으로 아주머니가 들고 있던 파일을 받아 들고 사인을 적어 돌려 드리며, 내 이름 밑의 직업란에 ‘실업자’라고 체크된 부분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남은 몇 집이 있다며, 보폭이 작고 빠른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 질러 나갔다.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집으로 들어와 소파에 잠시 몸을 꺼트리듯 뉘였다.

허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들고 있던 오천 원짜리 상품권은 골드 컬러의 봉투에 담겨져 있었는데, 마치 결혼식 초대봉투마냥 쓸데없이 화려했고 두툼했다.

하루 종일 작업하다 나온 늦은 오후, 나는 그렇게 공식적으로 실업자가 됐다. 마침 팔목 통증 때문에 붙이는 파스도 다 떨어졌고, 내일 약국에 가서 파스나 한통 사와야지 싶다. 오천원이 넘으려나….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