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과 지방…이분법적 사고 남아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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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중앙과 지방…이분법적 사고 남아 있는 것인가 김윤아 작가의 Life is pain.ting…#36. 지역 전시

기사입력2020-12-06 10:00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지역 소도시에서 하는데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곧 다가올 전시를 치러야 할 공간 대표의 말이었다.

올해 이미 한 번의 개인전을 치른 후라 고민이 많던 내게 일종의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의도 정도로 나는 해석했으나, 실상 고민이 많기도 했다.

공간이 크든, 작든 개인전을 일 년에 두 번 치른 적도 없거니와, 직접 공간을 가 본적이 없는 상태에서 정보만 가지고 전시의 형태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한 번쯤 직접 방문해서 공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나, 쉽게 오가기 어려운 거리는 차치하고 이 곳에서 준비할 일정들이 있어 몸을 움직일 틈이 없었다.

직접 그려서 보내준 공간도면과 기존 전시사진과 영상 등의 자료를 가지고 공간구성을 시작하고 있는 내게, 간간히 근황을 주고받는 이들이-아마도 공간 대표가 내게 했던 말의 의도와 비슷한 맥락으로-뱉은 말들이 이상하리만치 다 비슷한 내용들이었다.

“지역은 아직 꽃 그림 좋아해. 크게 신경 쓰지 마.”

“지역에서 하는 건 기존 작업 그냥 가져다 놔도 괜찮아, 어떻게 매번 신작을 해.”

“그냥 평면 작업 소품 위주로 걸고 끝내도 괜찮지 않아?”

“어차피 지역은 지역 작가만 좋아하잖아. 뭘 해도 냉담할거야.”

듣다보니 의문이 생겼다.

하기사, 나 역시 처음 전시 제안이 들어왔을 때 서울에서 한 작업을 지역에 계신 분들이 볼 수가 없었으니 두 번 비슷한 전시를 돌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일 년에 개인전을 여러 번 하는 작가들은 신작 20~30%, 기존 작품 80% 정도를 섞어서 하면 된다는 일종의 ‘마지노선’ 같은 말도 여러 번 듣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정작 전시를 준비하는 ‘내가’ ‘재미’가 없었다. 여튼 이래저래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전부터 한 번쯤은 해보고 싶던 전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독했던 지난 장마철 한복판에 전시를 치른 후 시작한 작업은 가을이 거리에 완전히 차오를 때쯤 마무리가 되었다.

작가에게 있는 특권 중에 가장 매력있는 일이라는 건 자신의 작업에 첫 번째 관객이 된다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업장에서 조명을 맞춘 후 돌아보기 전 심호흡을 했다. 낯선 자의 눈이 되어 보는 순간은 절망과 희열의 갈림길에 선 느낌이다. 다시 말해, 길게 자괴하거나, 짧게나마 ‘자뻑’하거나.

깊은 심호흡 후 돌아본 작업은 다행히도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고, 애초에 예상했던 모습으로 탄생해 주었다. ‘자뻑’의 순간이다.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좌절이 올 수도 있지만 경험치에 의하면 이번엔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작업 기록을 위해 간단하게 촬영을 해두고 모처럼 개운하게 잠들었던 날이다.

<사진=김윤아 작가>

새벽부터 차로 서너 시간을 달려 다다른 전시공간 앞의 마당에는 백년이 되었다는 석류나무가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쪽으로 바위처럼 열매가 크게 자란 모과나무가 있었다. 석류나무나 모과나무 역시 기억에 없는 걸 보니 본적이 없거나, 보았더라도 ‘본’ 적 없는 나무였을 게다.

그 모습과 탐스러운 열매에 대한 감탄을 뒤로 하고 전시장 안에 들어섰다. 공간은 예상과 흡사 판에 박은 듯 거의 같은 모습이었고, 미리 짜온 전시 도면대로 진행을 하자 거의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다. 아무리 잘 아는 공간이라도 설치하다 보면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거나 확신했던 뷰(View)조차 느낌이 달라서 애를 먹는 경우가 있어 소위 ‘플랜 B’를 준비해 가는 게 보통이었는데, 원래 계획이 변동된 것 하나 없이 비교적 수월했던 설치 날이었다. 대략의 설치를 마무리 하고 폰으로 촬영을 한 후, 궁금해 하던 몇몇 지인들이게 사진을 보내주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역 분들은 이런 형이상학적인 작품 어려워 할 걸!”

아티스트 토크는 저녁 6시부터였고, 시간이 되자 제법 많은 분들이 전시를 보러 들어오셨다.

나는 아마 그즈음 거의 다 내려놓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해온 몇 번의 아티스트 토크는 대부분 작가들과 미술 관련 기획자나 비평가들 사이에서 진행해왔다면 처음으로 일반 관객들만 모인 자리였고, 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준비기간 내내 들어온 이야기들 때문이었을까. 어떤 기대도 없었다. 좋은 질문이 나올 거라는 기대. 작업적으로 내가 놓친 부분을 알게 될 질문이 있을 거라는 기대. 기억에 남을 만한 감상평, 혹은 리뷰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작은 전시장에 관객 분들이 가득 자릴 메우고 나는 설치할 때 쓴 간이 의자를 밀어 조금 앞쪽에 자릴 잡고 앉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 밖에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고, 공간 대표가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내 소개를 했다. 다시 정적.

예상한 상황이었고 언제나 그랬듯,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일이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한 분이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울컥하며 불안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미술과 아무 연관도 없고 잘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소개를 시작으로 본인이 느낀 감상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듣고 있으면서도 그 솔직한 발언에 짐짓 놀라고 가슴 한 편이 이상하게 말캉해 짐을 느꼈다.

그 분의 발언이 끝나갈 무렵 이어서 옆의 분이, 그리고 다시 그 옆의 분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이런 전시를 볼 수 있게 돼서 고맙다는 이야기들, 잊고 있던 기억을 생각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들, 공통된 사회 문제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 그리고 작업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이 오가는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제대로 된 리뷰를 받고 있다는 생각.

매체에 관한 이야기나, 사실 작업과는 하등 관계없는 애매모호한 이야기, 소모적인 비평과 닿지 못하는 이야기가 난무하거나, 살면서 어쩌다 한번 혹은 아직 접해 보지 못한 이름조차 낯선 철학가 이야기가 빗대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아무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저변에 깔려 있던 지역을 향한 ‘촌스러움’은 없었다. ‘로컬 투 로컬’이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인식에는 중앙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잔재처럼 남겨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늦도록 뒷풀이가 이어졌는데, 그간의 피로가 누적된 몸으로 끝까지 자릴 지켰던 이유는 나의 반성 때문이었다. 나의 얕은 기대에 대해.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