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제민주화·재벌개혁 폐기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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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민주당, 경제민주화·재벌개혁 폐기를 선언했다 재벌총수 일가 지배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 상법개정안

기사입력2020-12-09 19:14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세계 유일 ‘3%룰’ 기업들 반대에도 단독처리>. 9일자 조선일보 경제면 기사제목이다. 팩트 자체가 틀린 부분은 없다. ‘세계 유일’이라 꼬집어 3%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전제했지만, 이 정도면 드라이한 제목이다. 재계의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저항의 강도 또 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와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가결한 상법개정안. <3％룰 찔끔 수정으로 기업사냥꾼 막으라는 건가(서울경제)>. <기업 감사 3% 룰 막무가내 입법, 1주(株)1의결권 否定이다(문화일보)>. <“눈가리고 아웅…개별 3%룰 완화, 실효성 없다” 재계의 절규(아시아경제)> 등 집권여당의 독주를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지만, 기사량도 그렇고 비난의 수준 또한 그리 세지 않았다.

평소 조선일보답지 않은 가치 중립적 기사제목. 상법개정안에 대한 극우 성향 메이저 언론의 방관자적 보도. 일부 마이너 언론이 상법개정안 때문에 재계가 ‘절규’한다지만, 왜곡·과장으로 가득찬 엄살일 뿐이다.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개정안이 찬성 154인 반대 86인 기권 35인으로 통과됐다. <사진=뉴시스>

21대 첫 번째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인 9일,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가장 크게 웃을 이는 삼성·현대·SK·LG 등 재벌총수일가. 이들은 공정경제·경제민주화 기치에 동참했다는 명분도 확보했고, 집권여당이 입법을 통해 보유 지분 이상의 의결권까지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재벌개혁이란 시대적 과제까지 역행하면서, 상법을 개악인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세계 어떤 나라에도 입법례가 없다는 3%룰. 1명 이상의 독립적인 감사위원 선출이 용이하도록 함으로써, 재벌총수 일가가 통제하는 이사회를 감시·견제하기 위한 입법이다. 이사회 운영의 합리성·공정성 도모를 위해 법무부가 초안을 마련했지만, 민주당이 쭉정이로 만들었다.

3%룰. 법무부 초안은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다른 이사와 분리 선임하도록 하면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산해, 의결권을 3%로 제한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의결권 행사 3% 요건을,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합산’ 지분에서 양자 ‘개별’ 지분으로 완화했다. 예컨대 대주주와 특수관계인(또는 계열사) 10명이 각각 5% 지분을 가졌다면, 각각의 의결권을 3%씩 총 30%까지 의결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8일 경제개혁연대 논평에 따르면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개별 3%’ 방식으로 제한할 경우, LS·GS는 ‘합산 3%’ 방식보다 80%이상 의결권을 더 행사할 수 있다. 두산(65.49%), GS건설(60.67%), OCI(57.43%), LG(51.34%) 역시 50%이상 의결권을 더 가질 수 있다. ‘합산’이 아닌 ‘개별’ 제한 방식은 입법취지에 반해, 독립적 감사위원 선임을 사실상 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와 함께 개별 3% 방식으로 의결권을 제한한다면, 재벌총수 일가가 안정적 의결권 확보를 위해 ‘지분쪼개기’에 나설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법 시행 직전, 정몽구 회장 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지분(13.39%)을 매각해, 총수일가 지분율을 29.99%로 떨어뜨린 전례도 있다. 결국 개별 3% 방식은 총수일가가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과도한 지배력을 보다 공고하게 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울러 재벌총수 일가가 지분쪼깨기에 계열사를 동원함으로써 계열사 간 출자구조는 더 복잡하게 만들 우려가 크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할 상법개정안이, 재벌그룹 총수일가에게 기업지배구조를 개악하도록 유인하는 꼴이 된다.

3%룰. 조선일보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규제방식이라고 했다. 세계 어디에도 유래가 없는 재벌대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세계 유일 3%룰로 규제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알맹이는 모두 거세되고, 빈껍데기만 남은 3%룰 만으론 재벌대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바로 잡을 수 없다.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목표로 공수처법에 드라이브를 걸 듯, 재벌개혁을 위해 ‘합산 3%’룰을 채택하지 못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재계의 압력에 스스로 굴복했다. 이번 상법개악안 국회통과로 민주당에게 재벌개혁이란 국정과제가, 親재벌정당이란 본성을 감추기 위한 치장이었음이 명백해졌다.

재벌대기업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경제력 집중 완화, 중소기업·소상공인 생존권 보장을 위한 공정경제 조성 등.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란 과제는 또다시 시민사회 몫이 됐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할지 기약할 수 없어 힘들겠지만, 가야할 길이기에 우리 모두 덜 상처받고 낙담하지 않았으면 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