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돌을 올린 거대한 저울이 ‘0’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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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큰 돌을 올린 거대한 저울이 ‘0’을 가리키고 있다 일상의 흥미와 재미…곽덕준의 미술㊤

기사입력2020-12-20 10:00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교토에서 태어난 곽덕준은 자연스럽게 일본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이후, 가본 적도 없던 ‘한국’인이 됐다. 이 때문에 ‘조센징’이라고 놀림을 당하고 늘 일본 내 사회의 주류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통로를 지나 대학교에서 일본화를 공부했다.

◇이방인의 삶=곽덕준은 23살에 폐결핵을 심하게 앓아 3년간 투병생활을 했고, 그 생사의 기로에서 일본의 의사들에게 한국인이라 차별받기도 했다. 고난한 투병생활은 곽덕준에게 물욕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스스로 예술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60년대 곽덕준의 작품은 이러한 투병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이다.

‘계량기와 돌’(2003 재현), 계량기, 돌, 125×38×58cm, 197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러나 정작 자신의 국적지인 한국에서도 이 소외감은 지속됐다. 곽덕준의 일본인 같은 외양과 말씨에 당시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정서적 거리감을 두었다.

실질적으로 곽덕준에게 진정한 의미의 ‘국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서적 소외감은 작가에게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곽덕준은 국가와 인종이라는 민족주의에 의한 시대의 피해자로, 그 누구에게도 이러한 피해를 주장해 그의 삶을 보상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상의 의미 모색=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정원에는 거대한 저울로 쌓인 탑이 있다. 우선 저울이라는 사물이 주는 무게감과 거대한 작품의 크기가 시선을 끌고 있다.

그러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저울은 0를 가리키고 있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육중하다기보단 그저 저울의 무게를 한 개씩 더 많이 나눠서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크기에 비해 가리키는 숫자가 무겁지 않으며, 단계마다 어느 한 저울이 더 많은 무게를 짊어진 것이 아닌, 공평하게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곽덕준이 1970년대에 진행했던 ‘측정’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곽덕준은 주변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 혹은 무용한 것들의 무게를 재거나 자의 크기를 확대해 길이를 쟀다. 이러한 행위들은 일상을 전복하려 하거나 뒤틀려진 심상을 표현하는 자극적인 것이 아닌, 꼭 필요한 혹은 그렇지 않은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행위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시장에서 물건에 따라 무게를 재거나 수량을 세어 보고 이에 맞는 값어치를 치르는 행위가 익숙하다. 무게나 크기가 수치로 표현되는 것은 이성에 근거하고 있는 사회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수치를 재는 존재의 가치는 이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실험미술은 이러한 사회적인 행위의 가치에 물음표를 그리게 한다.

그러나 사물의 가치를 보편적인 숫자로 이해하고 그의 의미를 생각하는 행위는 어쩌면 세상과 공감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려는 작가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러한 그의 미술은 엉뚱한 행위로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지점에 있기도 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태현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