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에서 떠나왔지만 돌아가기 좋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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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좋아하는 일에서 떠나왔지만 돌아가기 좋은 때 Life is pain.ting #39. 호연지기

기사입력2021-03-01 10:00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Y를 처음 만난 곳은 통영의 어디쯤이다. 기획자가 제안한 워크숍에 몇몇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호연지기’를 다지자며 떠난 곳이었다.

2박3일의 일정동안 내게는 개인적인 일정이 하나 있었는데(지난 달 작품을 구입한 콜렉터가 통영에 잠시 지내고 있어서 때마침 일정이 맞아 통영에서 작품을 전달해주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기획자가 이곳 통영에 대학 동문이 작은 까페가 달린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들러볼 것을 제안했고, 어차피 콜렉터를 만나서 작품을 건네 줄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나는 흔쾌히 그러자 했다.

서울에서 이른 아침 한 차로 출발해 여유있게 도착한 통영은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는 길목부터 바닷가 특유의 내음이 창문 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걸 ‘짠내’라고 한다고 했나. 아무튼 어감상으로는 짠내보다는 조금 더 크고 투명한 냄새였다.

고속도로를 나와 처음 들어선 곳은 ‘중앙시장’이라는 곳이었는데, 교통이 혼잡했고 번화한 곳이었다. 납작하고 조밀하게 달라붙어 있는 작은 상점들이 각각의 원색 간판을 달고 도로를 따라 어찌 보면 참으로 조악스럽고, 또 어찌 보면 옹기종기 다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 쪽에 예약한 숙소가 있었고, 우리는 간단하게 짐을 풀고, 시장에 들러 횟감을 이것저것 사서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시장은 코로나 여파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의 크고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진열돼 있는 싱싱한 각종 해산물과 희고 노란 조명, 얼마나 오래 됐는지 가늠할 수 없는 도마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칼질과, 수족관에서 쉼 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활어들의 풍경 등과 뒤섞여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 풍경은 하루 종일 서서 볼 수도 있을 만큼 내게는 다소 낯선 풍경이었다. 다행히 우리를 안내한 기획자는 부산 출신이라 이것저것 시장에서 보이는 신기하고 낯선 생물들의 이름과 식용방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별 고민 없이 식사를 정할 수 있었다.

식사 후 숙소에 들려 한 숨 돌리고, 초저녁 즈음 기획자의 동문이 운영한다는 소위 ‘한 때 좀 나갈 뻔? 했다는’ 친구의 펜션으로 향했다. 그 둘이 종종 연락을 해오곤 했지만 만나는 건 4년 만이라고 했기에 속으로 오랜 친구의 반가운 재회 정도를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중앙시장에서 차로 20~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산자락 중간쯤에 위치한 모던한 분위기의 펜션이다. 입구를 찾아 헤매다가 들어선 곳에서 그의 동문을 만났다. “어 왔어?”하고 짧게 인사를 던진 그는 하물며 우리쪽으로 시선조차 주고 있지도 않았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창가 쪽에 털썩 앉아 시선을 바다로 향해 던진 채 있던 그는, 덕분에 머쓱해진 기획자가 같이 온 작가들 소개할 때도 시선을 허공 아무 곳에다 놓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소 짜증이 섞여있는 말투와 내주지 않는 시선과 툭툭 내던지듯 말을 뱉어내는 태도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그의 친구인 기획자는 그 모습을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사진=김윤아 작가>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동안 그간의 이야기들을 알게 됐고 더불어, 그가 왜 통영에 와서 펜션을 하며 지내게 됐는지 등등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우습게도 그가 전형적인 ‘츤데래’ 스타일로 좋아하는 친구일수록 무뚝뚝하게 대하는 성격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작업에 정진하던 그가 작업을 그만둔 이유는 사실 전형적인 이유였다. 개인적으론 나 역시 오랫동안 작업을 그만두고 떠난 이유와 거의 비슷한 궤도였다. 그 후 나는 여러 사유로 다시 한국에 돌아와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는 그 사이 비즈니스를 키우고, 이제는 제법 안정적으로 삶을 꾸리고 있었다.

펜션을 관리하고, 남는 시간이면 배를 타고 바닷가에 나가고, 개(태양이)와 산책을 하거나, 다시 펜션을 관리하는 그의 시간은 짐짓 여유롭고,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치열하게 관리해온 흔적이 역력한 건물 내 외관의 사이사이 밀도는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공허함을 바탕으로 지어진 게 분명해 보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넓은 창을 가득 채우고 있던 파란 바다는 사라졌다. 우리들은 조금씩 취했고, 기획자는 그에게 작품을 다시 시작하라고 몇 번인가 권고했으나 그는 꾸준히 고개를 저었고, 동시에 끊임없이 예술과 미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사이 도착한 콜렉터에게 작품을 건넸고, 우리들은 계속해서 작업 이야기와 미술계 이야기들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오후 Y는 그가 마련한 작은 보트에 우리들을 태워주겠다고 연락을 했고, 근방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그의 보트 선착장으로 향했다. 모터를 켜고 제법 큰 엔진음이 울리는 민트색 보트에 올라 바다 한가운데로 향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왜 싫다고 했어?” 목적어가 빠진 질문이었지만 그는 ‘무엇이?’ 라고 재차 묻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앞에 앉아 있었기에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두렵다”라는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