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 보편화에 힘쓰며, 근현대 미술지형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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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판화 보편화에 힘쓰며, 근현대 미술지형 넓히다 다양한 아름다움의 모색…유강열의 미술㊦

기사입력2021-06-11 16:45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작품 84-1020, 1950년대, 종이에 목판화, 60×4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유강열은 다양한 미술작품을 창작했는데 그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작업은 판화였다. 일본에서 판화와 염색을 공부했고, 또 미국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왔을 만큼 기술에 대한 지식이 남다르기도 했다.

◇판화가 유강열=1951년 통영에서 국전에 출품하기 시작한 유강열은 자연의 모습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작품을 창작했다.

통영의 바닷가에서 생물들의 움직임과 물속을 유영하는 해조류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패턴을 발견했으며, 햇빛이 바다에 비치는 빛의 움직임이나 산과 꽃들을 관찰하고 사색하는 과정을 거쳐 그들의 형태와 동선을 단순화해 추상적인 형상으로 재현했다. 그리고 이러한 추상적인 형태들은 강렬한 조형감각으로 되살아났다.

그는 한국의 전통을 작업의 요소로 활용했다. 화조화나 산수화의 화면 구성법을 따랐으며, 화면에 등장하는 검은 선의 두각 역시 그 기원을 수묵화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판화 유학시기를 거친 유강열의 작품은 한층 대담하고 화려해졌다. 앤디 워홀, 앙리 마티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화려한 색감과 과감한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은 그의 판화가 추상화의 영역에 자리잡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작품의 화려한 색감은 서양의 것이 아닌 민화의 색상을 차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전통에 대한 현대적인 변용은 판화라는 장르의 확대와 더불어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유강열은 공예와 판화 이외에도 국회의사당의 바닥 패턴작업과 같은 실내건축 디자인이나 글자 디자인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미술의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포스터 문자도안 일괄, 9.2×39.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故유강열 기증)

당시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에 그의 행보는 오늘날 디자이너와 닮아 있다. 여러 측면에서 과도기적 시기를 살아온 그는 공예에 대한 개념을 확립하고, 판화라는 장르의 보편화에 힘을 쓰며, 근현대 미술 지형을 넓히는데 기여했다.

또한 그의 작품 역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혹자들은 그가 작품의 근원을 지속적으로 전통적인 것의 모색에서 찾으려고 한 것을 두고 야나기 무네요시의 그늘에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적인 것의 모색에 머무르지 않고 동도서기의 자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새로운 도구의 습득과, 장르와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작품활동을 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기틀을 정립함과 동시에 외양의 확장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다.

유강열은 상상력을 기름지게 하는데 성의 있는 노력을 한 사람은 질서, 균형, 구조 등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며, 비판력을 기조로 하는 분류의 능력과 그 위치를 알아내어 주어진 사태의 역기능을 투사할 줄 알고 비유력과 유사점을 발견하는 것이 인간의 잠재력이라고 했다(p.219, 유강열, ‘구성과 인간. 한 공예미술가의 입장에서’, “유강열과 친구들:공예의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