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경력단절’ 아닌 ‘경력보유’로 인정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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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돌봄노동…‘경력단절’ 아닌 ‘경력보유’로 인정돼야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킨 성동구의 조례 제정안

기사입력2021-08-31 15:29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서울 성동구는 ‘경력단절여성’이라는 용어를 ‘경력보유여성’으로 전환하는 조례 제정안을 지난 8월19일 입법예고했다. 돌봄노동에 대한 경력을 인정하고, 구청장은 돌봄노동에 대한 ‘경력인정서’를 발급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경력보유여성은 ‘단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의미를 벗겨내고, 사회적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인적자원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 환자나 노인, 어린이와 같은 사람을 돌보는 활동 또한 경력으로 인정해,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사용하던 에너지를 가정으로 옮겨와 활용한 기간의 노동가치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흔히 ‘경단녀’라고 불리는 경력단절여성에 대해 단절과 포기의 의미가 아닌 잠재력을 가진 인력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경력보유여성으로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반영된 것이다. 루트임팩트, 위커넥트 등의 소셜벤처기업들이 여성인력의 경험과 전문성에 집중해, 경력보유여성이라는 용어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이 단어는 경기도 일자리재단에서도 경력단절여성을 대신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25~54세 기혼여성 853만4000여 명 중 육아나 가족돌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여성은 149만5000명으로 17.5%를 차지한다.

경력단절여성이 직장(일)을 그만둔 사유는 육아(42.5%), 결혼(27.5%), 임신·출산(21.3%), 가족돌봄(4.6%), 자녀교육(4.1%) 순으로 나타났다. 결혼과 출산 사이의 기간이 짧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사실상 출산과 육아활동이 경력단절 이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출산과 육아에 집중하는 시간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2~3년에서 10년 이상이 되기도 한다. 오랜 공백 기간 후 취업시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무엇보다 경력단절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편견이 재취업의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들 중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비율이 최상위에 속함에도, 남성과 여성의 고용률은 각각 90%, 63%로 격차가 가장 크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인력들이 적재적소의 경제사회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그동안 각종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경력단절여성의 사회 복귀는 쉽지 않은 과제이며,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경력단절여성들에게 제공된 일자리 수준과 희망 일자리 수준의 미스매치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집안에서 육아만 하던 능력 없는 여성’이라는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경력보유여성이라는 용어의 전환은 이러한 부정적인 편견을 깨뜨리고, 이 사회가 여성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작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전반전인 고용사정이 악화되는 가운데, 여성인력은 가장 먼저 노동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인력을 고용하는 기업의 인식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경력 공백을 가진 여성인력의 재취업이 가능해진다.

경력공백 기간을 메울 수 있는 맞춤형 상담과 직업훈련, 취업 지원 등의 서비스 확충도 필요하다. 육아와 출산으로 인해 돌봄노동을 했던 기간이 사회로 다시 나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정책도 더 넓게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육아와 출산으로 인해 경력을 쌓아가는 기회가 중단되지 않도록 현실적인 돌봄 지원 확대도 절실하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