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하는 말이 떳떳해 국민에게 믿음 줘야

프린트

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정치인은 하는 말이 떳떳해 국민에게 믿음 줘야 많은 말이 넘쳐나는 세상…“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 … 言必信”

기사입력2021-11-08 10:19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공자가 어질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의 인(仁)을 강조하기 때문에 흔히 유가가 사회 도덕·윤리에 관한 사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공자가 늘그막에 십수 년 동안 이곳저곳의 여러 군주를 찾아가 어진 정치를 설파하며 다녔던 것처럼, 공자의 꿈은 최종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세상정치에 펼 기회를 얻기 위해서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었다.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의 한 구절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개인의 도덕수양을 통해서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고 최종적으로는 세상을 고루게 다스리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유가사상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 즉 세상을 두루 고르게 잘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날 나라라는 뜻인 국(國)이 한국, 중국, 미국, 일본 등 각각 나라의 단위이고, ‘하늘의 아래’라는 뜻인 천하(天下)는 세상 전체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는데, 애초에 ‘국’과 ‘천하’의 개념이 형성됐던 기원전 10세 즈음 주(周)나라 때의 ‘국’은 중국의 각 지방국이고, ‘천하’는 중국과 주변 이민족 국가를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군(君)자는 손[∋]으로 작대기[｜]를 잡고 있는 모습의 ‘다스릴 윤(尹)’자와 ‘입 구(口)’자가 합해진 글자다. 군주가 권력을 장악해 입으로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다.<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출처=漢字演變五百例 참조>

그리고 군(君)이나 왕(王)이 나라의 최고통치자로서 비슷한 의미라고 알려져 있지만, 본래 주나라 때에는 각 지방의 국을 다스리는 제후(諸侯)를 군이라고 했고 천하를 다스리는 이는 왕이라고 했는데, 이때 왕은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모두에게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성인(聖人)과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인식했다.

군(君)자는 손[∋]으로 작대기[｜]를 잡고 있는 모습의 ‘다스릴 윤(尹)’자와 ‘입 구(口)’자가 합해진 글자인데, 흔히 작대기는 왕이 조정에서 예식을 주관할 때 들고 있는 옥으로 된 규(圭)로서 이것을 들고 있다는 것은 권력을 장악해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구(口)자는 군주가 입으로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다.

성(聖)자는 ‘귀 이(耳)’자, ‘입 구(口)’자, 임금 왕(王)자로 합해진 글자인데, 이 말은 세상의 소식을 듣고 그것을 입으로 세상에 명령을 내려 다스리는 왕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군(君)이나 세상을 다스리는 성인의 자질을 가진 왕 모두 입을 통해서 세상에 정치를 펴는 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군(君)이나 왕(王)이 그들의 통치행위를 입을 통해서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정치인 역시 입을 가지고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밝혀 국민의 신임을 얻어 최고통치자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는 것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성(聖)자는 ‘귀 이(耳)’자, ‘입 구(口)’자, 임금 왕(王)자로 합해진 글자다. 성인이란 세상의 소식을 듣고, 그것을 입으로 세상에 명령을 내려 다스리는 왕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다.<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출처=漢字演變五百例 참조>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에게 있어서 말 한마디는 참으로 중요하다. 무심코 내던지는 한마디 때문에 지지율이 버쩍 오르다가도 잘못 말한 한마디 때문에 어느 순간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은 SNS 시대에는 정치인이 매일 같이 쏟아내는 말들 가운데 거짓말을 했거나 과거에 했던 말과 조금이라도 다르기라도 하다면, 이른바 ‘유튜브 수사대’라고 불리는 일반시민들이 인터넷 여기저기를 샅샅이 검색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은 더더욱 한마디 한마디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내년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에 나설 여당과 야당의 후보들이 여러 차례의 열띤 토론회에서 내놓은 한 마디가 다음날 바로 사회적 쟁점이 되곤 하는 것을 흔히 본다.

실제로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삼가지 않을 수 없다(言出於口, 不可不愼也)”라고 한 것이나, “입의 혀는 화(禍)와 우환(憂患)의 문이며, 자신을 망치는 도끼와 같다(口舌者, 禍患之門, 滅身之斧也)”라고 한 것처럼,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격언이 많다.

공자의 논어에도 유독 말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대목이 여러 차례 나온다. 학이(學而)편에서 군자는 모름지기 “일은 민첩하게 하되, 말은 신중해야 한다(敏於事而愼於言)”라고 한 것 이외에도, 같은 편에서 “교묘하게 말을 잘하고 얼굴을 예쁘게 꾸민 이 가운데에는 어진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고 한 것에서는 번지르르하게 말 잘하는 것을 경계한 것은 물론이고, 이인(里仁)편에서는 “군자는 말을 더듬고 행동을 민첩하게 하고자 한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라고 한 것처럼, 군자는 말을 신중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아예 말을 더듬듯이 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은 말들이 넘쳐나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치인이라면, 하는 말이 떳떳하지 못해 구차해서는 안 되며 국민 모두에게 미더움을 주어야만 한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노자(老子) 역시 도덕경(道德經) 56장에서 “지혜로운 자는 말을 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지혜롭지 않다(知者不言, 言者不知)”라고 해, 지혜로운 자라면 자신의 재능을 깊이 감추고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것이라고까지 했다.

춘추(春秋)라는 혼란기를 살았던 공자나 노자가 말을 매끄럽게 잘 꾸미는 것은 물론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것은, 말이라는 것이 대개는 말하는 사람이 의도하는 대로 말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은 앞뒷말을 잘라서 자기 생각대로 조합하기 마련이라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그가 한 말로 인해서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은 말들이 넘쳐나 혼란스럽기만 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국민에게 말로 자신의 정치적인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공자가 자로(子路)편에서 “군자는 말을 함에 있어서 구차함이 없어야 하고, … 말은 반드시 미더워야 한다(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 … 言必信)”라고 했던 것처럼, 모름지기 정치인은 하는 말이 떳떳하지 못해 구차해서는 안 되며 국민 모두에게 미더움을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