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에 편법승계·탈세…부끄러운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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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코로나 시국에 편법승계·탈세…부끄러운 민낯 자발적 상생의지 안보이면 부유세 등 논의 피할 수 없을 것

기사입력2021-11-11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국세청이 9일 대기업과 사주일가 30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착수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반사효과로 매출과 수익이 증가한 알짜회사를 사유화해 이익을 빼돌리거나, 일감 몰아주기·사업기회 제공 등 교묘한 방법으로 자녀에게 부를 편법 승계한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최근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설문을 통해 미국 증시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자신이 소유한 테슬라 주식 10%를 팔아야 할지를 묻는 온라인 설문에, 350만명이 참가해 58%가 찬성한데 따른 것이다.

테슬라 주가가 머스크의 트윗 한줄로 급변동하는 거야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지만, 주식을 팔지 말지를 묻는 설문이 본질은 아니었다. 머스크는 “미실현 이익이 조세회피 수단이 되고 있다는 최근의 논의”에 따라, 이것을 묻겠다고 전제했다. 미국이 억만장자세를 도입하면, 세금을 내기 위해 자신이 주식을 팔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주주들에게 호소한 셈이다.

이 논의는 부자들의 조세회피 의혹에서 시작됐고, 그 중심에 머스크가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월급이나 보너스를 받는 대신 주식을 보유해 재산을 불려 나가고 있다. 머스크 역시 스톡옵션을 받는 와중에 테슬라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다. 하지만 미국의 탐사언론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머스크는 2018년 한 해 동안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았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5년간 낸 소득세가 자산증가액의 1%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미국이 미실현 이익에 과세하기로 한 것은 아니다. 상원에서는 자산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나 3년 연속 연소득 1억 달러(약 1200억원) 등에 제한적으로 주식이나 채권의 가치도 과세에 포함하는(팔지 않은 주식 자체의 가치, 즉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억만장자세가 제안됐지만, 바이든 정부의 예산안에 바로 포함되진 않았다. 일부 언론은 억만장자세의 무산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이 전세계를 뒤덮은 가운데, 부유세 논란이 쉽게 사그러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워렌 버핏 등 미국 부자들이 스스로 부유세 부과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크다. 2019년에는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미국의 부자들이, 2020년 대선에 출마할 후보들에게 0.1% 안에 드는 부자를 대상으로 한 부유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부유세가 반드시 필요한지 여부는 차치하고, 부자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세금을 부과하라고 나서는 모습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관련 논의가 전무하다고 해도 무리없을 듯하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부유세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내고,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올해 초 정부와 여당에서 나온 코로나 이익공유제라는 아이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초과이익에 대해 민간의 자발적 참여로 상생하자는 아이디어는, 부유세보다 훨씬 완화된 접근이었지만 강한 반대에 직면해 논의가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국세청이 9일 코로나 반사효과로 매출과 수익이 증가한 알짜회사를 사유화해 이익을 빼돌리거나, 일감몰아주기·사업기회 제공 등 교묘한 방법으로 자녀에게 부를 편법 승계한 대기업과 사주일가 30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착수했다고 밝혔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이익을 추구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사주자녀가 지배하는 법인에 사업 시행권이나 부동산을 저렴하게 이전하거나 무형자산을 고가에 사주고, 사용료를 과다지급하는 방법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시국에 상생을 외치는 수많은 기업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부끄러운 민낯이다.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상생에 기반한 노력은 계속해서 필요한게 사실이다. 자발적인 상생의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부유세든 이익공유제든 상생을 촉진할 제도의 도입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억만장자세 논란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