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베트남의 뇌물 관행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정직하게 사업을 하겠노라 다짐했던 기업들도 ‘뒷돈’ 없이는 좀처럼 진행이 안 되는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건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관을 할 때 서류상 아무 문제가 없어도 일단 잡고 봅니다. 통관에서 막히면 적재료가 계속 들어갑니다. 결국 커미션을 줘야만 일이 진행됩니다”

4년간 베트남에서 홈쇼핑사업을 맡았던 롯데홈쇼핑 신용호 해외사업운영팀장의 말이다. 신 팀장은 1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아세안 시장 진출전략 세미나에 참석해 베트남 진출 기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베트남에 영상콘텐츠 제작사를 세운 한비에시디어의 양선욱 대표도 최근 해외진출 관련 세미나에서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TV광고에 입찰하는데 전체 비용의 40%를 커미션으로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커미션을 한번만 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진행되는 단계마다 요구하는 터에 힘들었다고도 했다. 양 대표에 따르면 현지 관료들은 뇌물을 수수할 때 얼마를 받았다는 영수증을 발급해준다고 했다.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다. 

롯데홈쇼핑 신용호 팀장도 현지에서 사업을 할 때 문서로 증거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말 바꾸기 관행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일단 구두로 승낙을 했으면서도 다음날 그런 적이 없다며 말을 바꾸는 경우를 자주 봤다. 문서로 남겨놓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또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몰라 담당자가 구두로 승인을 하면 회사에 보고를 했는데,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꿔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현지에 진출한 외국기업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베트남 현지 언론 ‘탕니엔’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상공회의소가 9859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기업의 66%가 “원활한 사업을 위해서는 비공식 비용을 써야한다”고 응답했다.

커미션 문화가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최근 베트남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을 주요 정책과제로 내세우며 내부고발자에 대한 포상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1일부터 베트남 정부는 정부기관, 국영기업의 비리를 신고하는 내부 직원에게 최고 16만달러(약 1억8000만원)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베트남의 최저임금이 한달에 310만동(약 16만2000원, 하노이·호치민 등 1지역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액수다.

이같은 어려움은 있지만 베트남 유통시장은 매력적이라는 것이 신용호 팀장의 말이다. 베트남 유통시장은 2012년 8.3%, 2013년 10.5%, 2014년 10.3%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유통시장 성장률은 2012년 1%, 2013년 2.1%, 2014년 2.2% 등 성숙기에 접어든 상태다. 베트남 유통시장의 규모는 2013년 기준 120조원으로 한국의 45% 수준이다.

국내 홈쇼핑 회사들은 2011년 이후 하나둘씩 베트남에 진출 중이다. 2011년 CJ오쇼핑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롯데홈쇼핑과 GS홈쇼핑도 현지법인을 세웠고 현대홈쇼핑은 사업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주방용품으로 베트남에서 재미를 봤다. 현지 매출의 41.5%가 주방용품에서 나왔고 레저·스포츠가 20.5%, 생활용품이 17.1%, 의류·잡화가 8.8%였다. 국내 매출은 의류·잡화가 24.6%로 많고 주방용품은 8.1%에 불과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해피콜 양면팬의 경우 한국 홈쇼핑회사를 모두 합치면 베트남에서만 1000만개 이상 팔았다는 것이 신 팀장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