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최근 “보이지 않는 규제가 더 무섭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보이지 않는 규제”라고 규정했다. 법적근거는 없지만 대기업의 사업진출을 막는 강력한 규제라며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른 규제로 등록·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중견기업과의 상생에 힘쓰겠다는 그동안의 발표에 비춰보면 그 진정성에 의문이 드는 내용이다.

전경련은 “보이지 않는 규제”란 “실제로는 개인과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지만 그 형식이 법에 근거하지 않는 규제”라며 “구두지도·행정지도, 권고·지침, 적합업종, 기부채납, 조세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 중 중기 적합업종제도에 대해서는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도모한다는 목적하에 대기업의 사업진출 기회를 엄격하게 제한” 하지만 “적합업종은 ‘민간합의’를 바탕으로 시행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와 정부는 자율제도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순 권고라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전경련이 보도자료에서 밝힌 바 그대로 중기 적합업종 제도는 법으로 대기업의 사업진출을 제한하는 제도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위의 주재 하에 상호 합의에 이르는 제도다. 합의에는 시한이 정해지고, 만료 시 당사자들이 재차 합의에 도달해 새로운 협약을 해야 한다. 사업제한 역시 구체적으로 정해진다. 잘 알려진 두부의 예를 보면 대기업은 올해 12월30일까지 포장두부 시장에서는 확장자제를, 비포장두부 시장에서는 진입자제를 해야 하며 포장용 대형판두부 시장에서는 철수하는 식이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적합업종 제도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적합업종 제도가 없을 때는 골목상권까지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중소·중견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생계영역에 침투하는데 어떠한 제약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법도 아닌 상호합의로 골목상권 진출을 제약받는 것을 ‘규제’라고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속내를 드러내면서 그동안 상생에 힘써온 많은 대기업들의 진정성이 일시에 의심받게 됐다. 법에 근거하지 않고 당사자간에 합의하도록 한 적합업종을 “법적근거 없는 규제”라고 인식한다면 그동안 적합업종 합의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원치 않았지만 거부할 수 없어서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의미다. 중소·중견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다양한 노력 역시 여론의 비난만 없었다면 실천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 보도자료를 배포한 전경련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경제계 기업경영헌장 실천지침’ 제4조에 상생경영을 명시하고 협력사와의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전경련이 이런 활동을 진정 자발적으로 벌여왔으며, 앞으로도 상생경영에 대해 의지가 있다면 적합업종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앞에서와 뒤에서 말이 다르면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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