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의 꽃 핀 사과나무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뭘 그린 거지? 토끼 모양의 구름을 찾을 때 마냥 아무리 봐도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뭘 그린 걸까? 닮은꼴 찾기를 그만두고 한눈을 팔다가 무심코 다시 보니 얽히고설킨 검은 선과 누렇고 퍼런 땅의 색 그 자체가 보인다. 사물의 형태나 질감, 입체감으로 무엇을 찾으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나니까 비로소 그림의 선과 색 그 자체가 보이는 것이다. 자료를 뒤져보니 몬드리안은 꽃이 핀 사과나무가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 공간을 가르고 있는 모습을 함축적으로 단순화했다고 한다. 그렇게 알고 나니 그렇게 보인다. 그림에서 땅과 풀과 빛이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파도처럼 지속되는 운동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림의 한가운데에서 쏟아지는 빛과 솟아오르는 나무가 만나 옆으로, 옆으로 하염없이 흐른다. 문득 숭고함을 느꼈다.

사람들은 현실을 감당하기 벅찰 때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안정을 취하려 한다. 신지학(神智學)은 우주적인 자연의 질서 안에 작용하는 영적인 힘을 과학적인 사유를 통해 밝혀내려 했다. 신지학의 이러한 태도는 전통사회와 단절을 통해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세기 말과 세기 초의 어수선한 틈을 타고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빠르게 흡수되었다. 몬드리안 또한 신지학에 심취했다. 그는 초자연적인 질서를 찾아 극한까지 내달았고 방종한 자연의 불쾌한 흔적을 모조리 제거하여 그의 그림엔 순수한 추상의 절대적 질서만 남겼다.

몬드리안은 아득한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 교회와 풍차와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의 지방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에게 대도시 파리는 화려한 불빛 아래 빠르게 돌아가는 미래의 상징인 동시에 늘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소용돌이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런 환경 때문에 그는 급변하는 도시의 현실을 뛰어넘어 영속적인 절대세계의 고요함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삼원색과 수직수평의 절대세계

Piet Mondrian,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1940년 몬드리안은 전쟁을 피해 뉴욕으로 왔다. 도시의 마천루가 노화가를 들뜨게 했다. 원시적인 자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도시의 구석에서 들려오는 재즈음악소리에 흥겨워하며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만족스러워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는 행복감이 그에게 밀려왔다. 그는 이때 ‘부기우기’ 연작을 그리면서 절제된 엄격함 속에서 경쾌한 리듬을 보여준다.

1943년 작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의 기하학적 이미지는 얼핏 인쇄물 같아 보인다. 도판에서 확인하긴 어렵지만 실제로 그림을 보면 물감의 물성이 도드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몬드리안은 수차례에 걸쳐 나이프로 물감을 밀어 넣는 식으로 색면을 구성했다. 이 작업은 단순반복

적인 노동이다. 노동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지향하는 가치가 분명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몬드리안은 사물을 지극히 단순화하여 극한으로 나아갔다. 거듭해서 생략과 함축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점점 사라졌고 색도 줄어들었다.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이 화면을 채웠다. 삼원색의 사이에는 흰 색과 검은 색, 회색의 무채색이 채워졌다. 몬드리안의 회화공간에는 엄격한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흐르는 생생한 기운이 있다. 이를테면 수직과 수평선의 비대칭적 화면 분할은 시선의 움직임을 유도하면서도 안정된 균형을 이루는 고도의 미적 배려다.

“그들은 큐비즘에서 발견한 질서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노랑과 회색 검정이 있는 구성을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그는 네덜란드 소도시의 엄격한 칼뱅주의를 신봉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오형제의 장남으로 자랐고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초기에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표현적인 경향을 보였으나 큐비즘을 알게 되면서 곧 바뀌었다. 20세기의 가치를 표방하는 큐비즘의 신선함은 그에게도 충격적이었다. 큐비즘의 선두주자였던 피카소보다 9살 많았던 그는 후발주자로서 큐비즘의 추상적인 질서를 더욱 엄격하게 밀고 나갔다.

몬드리안은 꽃그림을 많이 그렸다. 네덜란드 회화 전통에 따른 수요에 부응하여 팔기 위해 그린 그림이었다.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장식적 사용가치가 큰 꽃그림이 다른 그림보다 더 인기 있었다.

그는 고도의 절제를 요구하는 작업을 하면서 재즈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기곤 했는데 그림 안과 밖이 상보적인 반대급부로 채워지는 모양이다. 몬드리안은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고향으로 돌아가 데 스틸 운동을 전개했다. 전쟁이 끝나자 다시 파리로 돌아와 활동하다 2차 세계 대전을 맞이했다. 이후 그는 쇠락해진 몸으로 미국행을 택했다. 그곳에서 그는 오랜만에 평온을 맛보았다. 그의 엄격한 작품에도 아이와 같은 즐거움이 깃들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지낸 후 전쟁이 채 끝나기 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글=류장복 화가 jangboki@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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