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가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롯데백화점   ©중기이코노미

지난 한해를 뜨겁게 달군 백화점의 ‘갑의 횡포’에 대한 패션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불기 시작한 경제민주화 바람 덕분에 최근에야 수면위에 떠올랐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문제라는 증언이다.

2013년 봄 어느 백화점 입점업체 파견직원의 죽음에서 시작된 백화점 ‘갑의 횡포’ 논란은 백화점과 입점업체의 관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했다. 계약서에서 ‘갑’과 ‘을’이 없어지고 ‘백화점’과 ‘협력업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아주 작은 변화다.

12월에는 한국패션협회와 백화점협회가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두 협회는 불공정행위를 조율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고 공정거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협약이 기존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얼마나 근절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갑 입장인 백화점의 지위가 여전히 강고하기 때문이다.

300여 패션관련 기업들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패션협회의 한 관계자는 “패션업체가 을이고 백화점이 갑이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를 비롯한 다양한 언론사들이 백화점의 횡포에 대한 취재를 벌여왔지만 취재에 협조적인 업체가 거의 없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부당한 행위를 당했다는 심증이 있는 업체는 많았지만 구체적인 증언을 요구하면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언론사에서 “취재원을 보호해줄 수 있다. 불합리한 점을 보도해 고쳐보겠다”고 제안하더라도 업체측에서는 “언론사가 업체를 지켜줄 수 없다. 갑을관계가 얼마나 심한지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반응만 나올 뿐이었다.

극심한 갑을관계를 감수하는 이유는 백화점을 통하지 않고는 패션업체가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상호 패션협회 상무는 “패션업계에서 백화점에 의존할 뿐 독자적인 유통망을 개발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며 “스스로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갑의 지위가 크다고 해서 법을 어기고 입점업체 경영에 간섭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시민단체와 노조, 언론사와 국회에서까지 백화점의 ‘갑의 횡포’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은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경영정보 간섭에 비용, 인건비 전가까지 

  

업계관계자들이 전하는 백화점의 갑의 횡포는 매우 다양하다. 고액의 수수료 문제, 입점업체에서 직원을 파견받아 인건비 부담없이 백화점 직원처럼 일을 시키는 문제, 인테리어 비용 전가, 경영정보 간섭, 세일 강요 등이 대표적이다.

경영정보 간섭의 경우 업계에서 암암리에 알려져 있던 내용이 2013년 확인된 경우다.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백화점에 대해 입점업체에 부당하게 경영정보 제공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5억73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2012년 1월부터 5월까지 총 60개 입점 브랜드에게 현대나 신세계 등 경쟁 백화점에서의 매출자료를 요구했다. 이를 토대로 경쟁 백화점에서의 매출실적이 더 높은 입점 업체들에게 추가 판촉행사 등을 통해 롯데백화점에서 더 좋은 실적을 올리도록 요구했다.

타 백화점 매장의 매출자료를 요구한 것은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정한 ‘경영정보 요구의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경영정보 간섭뿐만 아니라 납품업체 종업원을 파견받아 판촉사원으로 활용하거나 인테리어 비용을 전가하는 등의 문제도 빈번히 발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유통업법에는 납품업체의 종업원 파견·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들은 판매 촉진과 인건비 절감 등을 목적으로 입점한 업체로부터 관행적으로 판촉사원을 파견받아왔다. 판촉사원들은 사실상 백화점의 지시를 받고 일을 했지만 인건비는 입점업체가 부담해왔다.

이들 입점업체 판매직원에게 백화점 측이 매출목표 달성을 강요하면서 비인간적인 대우가 있었다는 사실 등이 폭로되기도 했다.

또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백화점이 매장 리뉴얼 등을 실시하면서 매장이전이나 인테리어 교체 등을 입점업체에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위치와 시설변경에 따라 발생하는 인테리어 비용은 고스란히 입점업체가 부담했다.

공정위가 인테리어 비용과 파견직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가이드라인의 준수 여부는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12월 들어 백화점의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에 대해 공정위가 직접 조사에 나선 이유다.

중소기업에 수수료 더 받는 백화점도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고액의 수수료 적용 역시 입점업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불합리 사항이다. 특히 해외 유명브랜드에 비해 국내기업에 대한 수수료가 더 높고,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대한 수수료가 더 높다는 점이 공정위 조사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2013년 12월 공정위에 따르면 백화점 7개사의 입점업체 규모별 평균 판매수수료율은 대기업 29.4%, 중소기업 28.2%, 해외명품 22.0%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내 중소기업과 해외명품 사이의 평균 수수료율 차이가 6.2%에 달해 큰 차이를 보였다.

롯데, NC, 동아백화점의 경우에는 중소 입점업체의 판매수수료율이 대기업 입점업체에 비해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대기업에 29.6%의 수수료를 적용한 반면 중소업체에는 그보다 높은 29.9%의 수수료를 적용했다. 롯데백화점은 중소업체에 대한 수수료율이 조사대상인 7개 백화점 중 가장 높았다.

NC백화점 역시 대기업 수수료율이 22.3%인 반면 중소업체 수수료율은 23.0%로 더 높았으며, 동아백화점도 대기업에 24.1%, 중소업체에 25.6%의 수수료율을 적용했다.

공정위는 향후에도 판매수수료율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향후에는 판매수수료율 수준 외에도 입점업체가 부담하는 추가비용 수준도 함께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점수 중 수수료 인하규모 관련 점수를 높이는 등 수수료율 인하를 유도하고, 계약기간 중 판매수수료율 부당변경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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