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보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졌을 때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에 책임을 돌리며 핏대를 세운 것이 불과 4개월 전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 때부터 비리 기업인에 대한 특사를 최대한 신중히 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해왔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무슨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광복절 특사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14명의 경제사범을 풀어줬다.

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강행한 사면의 근거는 ‘경제 활성화’다. 차라리 SK그룹의 경영실적 개선이나 매출액 증가 등 구체적인 이유를 들었더라면 나았을 성 싶다. 전후를 비교해 재벌 총수 사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비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경제 활성화라는 뜬구름 잡는 문구다. 달성했다손 치더라도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경제 활성화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니 그저 입맛에 맞는 자료를 제시하며 경제가 살아났다고 주장하면 될 일이다.

이번 사면에서는 나름대로 형평성을 갖추려 한 흔적은 보인다. SK그룹에서는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두 명이 거론됐으나 최 회장만 택했고, 한화그룹에서는 김현중 부회장은 넣고 김승연 회장은 뺐다. 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대거 실시했을 때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보인다. 그러나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구색맞추기식 사면은 정부가 이번 사면의 정당성에 확신이 없다는 방증인 듯 보인다. 진짜 기업인 사면이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면 다른 경제인들도 풀어줬을 터다. 

‘김승연 회장 구하기’에 사활을 걸었던 한화는 속이 조금 쓰릴 듯 싶다. 사면 발표를 앞두고 한화는 정부의 눈에 들기 위해 꽤 바삐 움직였다. 이달 2일에는 “청년 실업문제 해결을 통해 국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며 고용규모를 확대하겠다고 공표했다. 정부의 8월14일 임시공휴일 지정 발표가 나기 하루 전인 지난 3일에는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이날을 유급휴가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김승연 회장 사면에는 실패했다. 정부의 경제인 특사 카드가 대기업을 온순하게 길들이기 위한 수단이 된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