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가 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사외이사의 성실성과 독립성 강화를 위한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 선임 반대 기준이 되는 이사회 참석률을 60%에서 75%로 높이고, 사외이사 재직 연수도 ‘당해 회사 10년’에서 ‘계열회사를 포함한 10년’으로 강화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은 사실상 기업들의 손을 들어준 것과 다를 바 없다. 자타공인 핵심 안건이었던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이사·감사 선임을 반대한다’는 안건이 보류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우리 증시의 ‘큰손’이다. 400조원 이상의 기금 중 80조원 가량을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차에서는 이건희·정몽구 회장보다 지분율이 높다. 지난해 말 자료에 의하면 국민연금 지분율이 5%를 넘는 기업은 약 200곳, 10%를 초과하는 기업도 17곳이나 된다. 10% 이상 보유시 단주 거래에도 공시의무가 발생하는 ‘10% 룰’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더 적극적인 투자도 가능해졌다.

이번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예상대로다. 사외이사 선임 반대 확대에 대해서는 “사외이사 인력풀 고갈” “사외이사 경험 사장” 등의 논리로, 오는 5월 상정이 예상되는 주주가치 훼손 임원 선임 반대에 대해서는 “기업경영 자율성 침해” “국민연금의 전문적·독자적 판단력 의문” 등의 논리로 각을 세우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제·기업의 투명화 논리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이 국민 전체의 노후자금이 모이는 ‘곳간’이라는 점이다. 이를 운용하는 입장에서 누구보다 막중한 감시자가 돼야 한다. 사외이사의 견제기능이 작동하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 최고경영진의 비리가 반복돼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기업들이 제기하는 ‘국민연금의 전문성’ 논란은 기업 자신이 경영권의 세습고리를 끊기 전에는 논리가 서지 않는다. 5월 2차 운영위에서 주주가치 훼손 임원 반대 안건이 처리돼야 하는 이유다. 

 

물론 국민연금이 정부의 ‘스피커’가 돼 기업 압박 카드로 사용된다면 기존의 ‘거수기 주주’에 비할 바 안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나 이념이 아닌 경제와 안정성·수익성의 논리로 주주의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국민연금은 청와대도 국회도 아닌 국민들이 내고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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