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모 중에서 아이들 교육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이들의 진로 문제다. 요즘에는 아들이 더 걱정이란다. 집집마다 딸은 알아서 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들은 게임에만 빠져 부모와 말도 안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은 있는 건지’ 볼 때마다 답답하다고 난리다. 특히 아빠들이 잔소리라도 하고 나면 사이만 나빠지기 십상이다. 보다 못한 엄마가 나서서 어떻게 소개를 받고 연락을 해 온다.

2년 전 만났던 A군의 부모는 모두 의사다. 집안 형편도 좋고 딸도 모범생인데 고등학생 아들이 유일한 걱정이다. 만나기 전 통화에서 A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건축가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만나보니 A군은 덩치가 크고 진중한 학생이었다. 질문을 해도 ‘씩’ 웃기만 할 뿐 말을 시원하게 하지 않는다. ‘난 네 편이니 하고 싶은 얘기 다 해라’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마음을 좀 열었구나 싶어 “어머니가 그러시던데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라고 하니 “아닌데요”라고 말한다. ‘그럼 뭐지?’ 하는 생각이 들어 “아, 건축가가 아니야? 그럼 뭘 하고 싶니?”라고 물으니 “저는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건물을 짓고 싶어요”라고 겨우 말한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다.

“어머님, 아드님이 하고 싶은 건 우리가 살 수 있는 실제 건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게임같은 가상세계에서의 건물이나 캐릭터 같은 걸 만드는 겁니다” “그게 뭔데요?” 어머니는 게임도 잘 모르고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와 같은, 아바타(분신 캐릭터)를 만들어 실제 세상에서 해 보지 못한 것들을 하는 인터넷 가상공간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 이러니 아들이 좋아하는 일, 되고 싶다고 하는 것들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될 수 밖에.

진로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이 본인도 잘 모르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뭘 하고 싶은지를 ‘찾아’내서 앞으로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할 건지를 정하는 일인데, 다행히 A군은 부모의 걱정과는 달리 진로가 명확해 보였다. 아이들이 생각이 없는 것 같아도 다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모들은 감정이 앞서는데다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옛날 교육스타일을 강요하니 아이들이 엄마 아빠랑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고 입을 닫게 된다. 이를 지켜 본 부모들은 애들이 ‘생각이 없다’고 속 터져 하는 것이다.

‘얘도 하고 싶은 게 있구나’ 마음이 편해져 환한 표정을 짓던 어머니가 옆에서 물어본다. “그러면 그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어머님, 보통 그런 일을 하려면 컴퓨터를 전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디자인(미술)을 공부해도 되고 사람들을 잘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학, 심리학 등의 문과 공부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관련 전공이 여러 개 있으니 그 중에서 끌리는 과목을 전공으로 정하면 됩니다”

A군에게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 줬다. “이런 공부를 하려면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보다는 세계의 인재가 많이 모여 있는 미국에 가서 하면 더 좋다. 그런데 이름을 들어본 좋은 학교에 가면 훌륭한 교사들이 많아서 더 잘 배울 수가 있지” “그럼 영어도 잘 해야 하죠?” “그렇지, 그래야 수업도 알아듣고 궁금한 것도 물어 보고 하지. 영어는 잘 하니?” “아니요. 이제 영어 공부도 좀 해야겠어요” 아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뭘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긴 모습을 본 어머니는 기쁨과 기대에 차 아들과 돌아갔다.

몇 달 전 잠시 한국을 방문한 친한 미국인 변호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요즘 자녀와 부모가 생각하는 장래가 이렇게 다른 경우도 있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플로리다에 이 분야에 전문화된 학교가 있는데 가보라고 추천했다. 처음 듣는 학교였지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여러 학과와 재미있는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 학교였다. A군의 어머니에게 전했더니 미국 학교를 알아보는 중이라며 고맙다고 한다.

얼마 전 A군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 아이를 미국에 있는 대학에 보내려고 계획을 다 세웠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좋은 학교를 못 가더라도 학부는 우리나라에서 나오고 대학원을 미국에서 다니는 게 선배들도 있고 하니 취업에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셔서 고민이다”고 했다. 부유한 집이긴 하지만 유학을 보내면 돈이 많이 들 텐데 투자대비 효과가 있을까 하는 것도 신경 쓰인다면서.

학부를 나오고 군대를 갔다 온 후 6~7년 뒤의 취업 시장을 알 수는 없지만, 네트워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냐 아니면 개인의 경쟁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냐에 따라 이 선택이 달라진다. A군이 졸업할 즈음에는 남과 다른 능력으로 기존에 없었던 일을 만들어가며 일하는 시절이 될 것이다. 요즘처럼 족보 외워 시험보고 토익 공부하고 자격증 따는 것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A군에게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해 줬다. 마지막 결정은 남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유학을 보내는 것으로 기운 것 같다.

모두가 유학을 갔다 와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유학을 갔다 오면 무언가 확실히 보장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SKY(서울-고려-연세대)를 졸업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뭘 하고 싶은지 왜 그런지를 말 못하는 졸업생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고민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교육을 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아이들의 관심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듣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주고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더 퍼텐셜 문병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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