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변종필 관장·미술평론가

두 화가는 국민화가라는 대중적 인지도만큼이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점이 비교된다. 박수근은 동시대 화가들과 다르게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홀로 독파해 성취한 예술세계로 한국현대미술사에 우뚝 섰다. 리베라는 멕시코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 후 스페인과 파리에서 신인상주의부터 큐비즘에 이르는 새로운 장르의 미술을 섭렵하고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 멕시코 정부의 절대적 신임과 후원 아래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세계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동시대 화가들을 이끈 리더였다. 박수근이 우직하고 말수가 적은 내성적 성격이라면, 리베라는 거침없는 성격에 많은 스캔들을 일으킬 만큼 정열적이고 외향적인 화가였다. 두 사람은 삶의 행태와 성격, 예술에 대한 생각과 지향점이 서로 다르지만, 화가로서 서민의 삶에 밀착한 시선만큼은 유사한 점이 있다. 박수근의 <앉아 있는 여인>과 리베라의 <피놀레 파는 여인>은 이런 점에서 비교할만한 대표작이다. 여성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은 부분과 유사한 화면 구성이 견줄만하다.

리베라-피놀레파는 여인/ 박수근-앉아있는 여인 1950s, 캔버스위에 유채, 27.8×22cm

<피놀레 파는 여인>(1924년, Encaustic on canvas, 81.5×60.5cm)은 리베라의 초기작품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노동계급에 속하는 여인을 그린 것으로 리베라가 벽화에서 보여준 장식적인 분위기나 서구의 모더니즘적 간결한 구성을 도입하여 세부적 묘사를 없앤 단순한 표현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여인의 모습이 압권이다. 노동계급의 여인이 입을 가린 채 한곳을 응시하며 앉아있는 정적인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이끈다. 오른손에서 왼손, 왼손에서 피놀레로, 피놀레에서 오른발로 시선의 흐름을 유도하며 여인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묵직하게 전달하고 있다. 성스러운 느낌마저 감도는 분위기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 표출되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역동적이고, 스케일이 큰 작품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서정성이 배어있다.

한편 <앉아 있는 여인>(1950년, Oil on canvas, 27.8×22cm)은 박수근이 한국 서민들의 진솔한 삶을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정립해가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박수근은 동시대 화가 중 시대적 리얼리티를 가장 진솔하게 담아낸 화가로 평가받는 데 실제로 그만큼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서민들의 시대상을 정감 어린 색과 형으로 담아낸 화가는 드물다. 박수근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표현대상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다. 무기력한 아버지들의 모습과 달리 당시 집안의 생계를 이어가는 주체인 아낙네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에는 한국전쟁 직후, 우리의 어머니들이 가사는 물론 노상과 행상까지 생계를 잇는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았던 힘겨웠던 시절의 삶이 그림 표면에 켜켜이 새겨져 있다.

<앉아 있는 여인>과 <피놀레 파는 여인>은 인물표현 외에도 색채사용과 배경처리에서 최대한 단순함을 추구한 점도 비교할만하다. 리베라의 그림이 박수근의 그림보다 색조가 강하고 배경을 수평선으로 나누어 변화를 주었다면, 박수근의 그림은 주조를 이루는 황색조에 흰색과 검은색을 대비시켜 단조로움을 피하며 화면에 몰입할 수 있는 집중도를 높였다. 두 그림의 또 다른 흥미로운 부분은 그림 속여인들의 모습이다. 두 여인 모두 그릇에 무언가를 담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리베라의 그림 속 여인은 작품 제목에서 암시하듯 피놀레를 팔고 있다. 피놀레는 멕시코 서민 음식의 재료인 볶은 옥수수 가루를 말한다. 옥수수가 주식인 멕시코에서 옥수수가루는 민생의 식탁을 책임지는 음식재료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밀가루를 떠올리면 될듯하다. 박수근의 그림 속 여인이 함지박에 담아 팔고 있는 것은 힐긋 봐서는 무엇인지 판단하기 아리송하다. 그림 속 여인이 파는 것은 식생활에 꼭 필요한 소금이다. 함지박에 소금을 쌓아 두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표정이나 동세로 보아 앞 손님이 다녀간 지 한참이나 지난 듯하다. 한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여유로움보다는 삶의 고단함이 더 짙게 다가온다.

박수근-소금장수, 1956, 캔버스위에 유채, 34.5×25cm/ 박수근-앉아있는 여인 1963, 캔버스위에 유채, 65×53cm

박수근이 ‘소금을 파는 여인’을 소재로 삼은 작품은 1956년 <소금장수>와 1963년에 <앉아 있는 여인>으로 이어진다.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시장의 여인들’, ‘노상’, ‘아이 업은 소녀’, ‘나무와 여인’ 등 빈번하게 반복한 소재들처럼 <앉아 있는 여인>도 같은 맥락의 그림이다. 1956년 <소금장수>와 1963년에 <앉아 있는 여인>은 살펴본 1950년대의 작품에 견주어 표면 질감과 크기, 여인의 동작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전체적 구성에는 큰 변화가 없다. ‘박수근 마티에르’라 할 수 있는 독특한 화면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초기의 흙벽 같은 바탕에서 점차 딱딱한 화강암처럼 견고한 질감으로 변모한 특징을 이 연작에서도 만날 수 있다. 1963년의 작품은 거친 화강암을 잘 다듬어 입자가 고와진 것처럼 표면질감이 한층 견고하면서 부드러워졌다. 여인의 모습은 왼손으로 얼굴(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두 손을 맞잡고 앞으로 모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작은 변화이지만, 직선 표현이 두드러지면서 화면의 분할구성이 견고해졌고, 색조가 한층 단순해지는 등 전반적으로 완성도와 세련미가 더해졌다.

<피놀레 파는 여인>과 <앉아있는 여인>은 여성의 역할과 구성에서 유사한 점이 있지만, 예술가로서 두 사람의 삶의 행태와 목표는 확연히 달랐다. 박수근의 예술작품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지만, 어떤 이념이나 선동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고, 오직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순박한 화가였을 뿐이다. 반면, 리베라는 멕시코 혁명을 시각화하고 멕시코 벽화운동의 양식을 이끈 실질적 지도자로 인정받을 만큼 활동영역이 넓었고 영향력이 컸다. 자신의 작품이 사회변화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동조할 만큼 예술 활동을 통한 사회변화의 가능성을 믿었다. 기계문명은 인간의 지적능력의 산물로 인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며,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세상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화가의 작품은 당시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시공간을 초월해 각자의 조국에서 차지하는 예술의 가치와 역할에서만큼은 우열을 논하기 힘들다. 누가 뭐라 해도 박수근은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 화가, 리베라는 ‘멕시코적인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한 화가라는 부분은 부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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