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막 웃으려던 참인가, 막 웃음을 거두는 중인가. 사랑스러운 웃음인가, 가벼운 비웃음인가. 입가에 머문 야릇한 미소가 시선을 계속 붙들었다. 언젠가 잔뜩 술에 취해 법당에 벌러덩 드러누워 잠을 잤던 적이 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눈을 떴을 때 때마침 비친 달빛에 황금빛 부처가 내 눈 하나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가늘고 기다란 눈은 뜬 건지 만 건지 종잡을 수가 없고, 꼬부라진 수염 몇 가닥과 입가에 걸친 미소는 아리송하기만 했다. 모든 허물을 용서하는 자비로운 미소 같기도 했고, 내 어리석음을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마음먹는대로 부처의 표정은 알아서 바뀌었다. 모나리자는 그 부처를 생각나게 한다.

인물의 배경에는 아주 멀리서 본 듯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창밖이라기엔 너무 아스라하다. 초저녁의 안개가 내려앉은 배경은 기이한 데가 있었고, 장신구 하나 없는 수수한 옷차림의 미소는 왠지 신비로웠다. 약간은 저릿해진 몸으로 반쯤은 사람들에게 떠밀려 그 자리를 떠났다. 열댓 걸음쯤 걸었을까, 아쉬운 마음에 힐끗 돌아보았다.

그녀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화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의 붓끝은 도대체 어딜 향해 있었던 걸까?

‘스푸마토’는 실증적 관찰과 과학적 합리성으로 도출한 조형방법

“예술적인 모방은 과학적인 행위다. 단순히 기계적인 공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적인 바탕 없이 작업에만 힘을 쏟는 사람들은 나침반 없이 바다로 나가는 선원과 같다.”-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의 전투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이나 글보다 정확한 드로잉은 책 한권과 같다며 조각이나 회화보다도 드로잉을 우위에 두었다. 실증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그는 무한한 자연을 신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늘 자연을 관찰했다. 그럼에도 그는 종종 알 수 없는 자연의 무한함에 경이를 느끼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흐린 날이 주는 시각적 효과에서 고안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의 스푸마토는 연기처럼 사라지다는 뜻의 sfumare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 기법은 자연의 신비처럼 불분명한 윤곽의 모호함을 타고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가 무한히 번져나가게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한 스푸마토의 경계는 사물의 입체성을 평면에서 시각화한 것이다. ‘볼륨’이 기독교 정신과 플라토니즘에서 비롯된 조형개념이라면, ‘스푸마토’는 실증적 관찰과 과학적 합리성으로 도출한 조형방법이다. 대기의 맑고 탁한 정도와 빛이 투과하는 체적공간의 크기에 따라 사물의 선명도를 결정하는 대기원근법은 스푸마토의 개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그가 평생 그리워한 엄마의 따스한 미소를 대신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을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그는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자유인이었다. 별의별 분야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온갖 것들을 고안했다. 물속으로 이동하는 잠수함, 두 바퀴를 체인으로 연결하여 굴러가는 자전거, 하늘을 날 수 있는 인공 날개, 개폐식 다리, 다양한 전쟁 무기, 하다못해 꼬치를 자동으로 뒤집어 주는 산적구이 기계까지 설계했다. 오늘날 다빈치가 설계한 그대로 물건들을 만들어 본 결과 대부분의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고 하니 놀랍다. 그림은 물론 조각, 건축, 음악에도 능통했던 그는 원근법을 집대성하고 해부학을 연구하기까지 했다.

그는 좋은 목소리에 잘 생긴 외모까지 신에게 받을 수 있는 축복은 모두 받았지만 사생아로 태어나는 바람에 제도의 혜택은 받지 못했다.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기 때문인지 그는 맞춤법을 자주 틀리는 등 기초교육이 부족했다. 상류층이라면 반드시 구사해야 하는 라틴어를 그는 40세가 다 되어서야 겨우 독학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대 정신을 배우는 것 역시 어려웠을 것이며, 그런 만큼 그는 주류 사회에서 빗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직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지적 호기심을 채웠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호방하고 여유로운 성격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궁핍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재능을 살 만한 권력자를 찾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가 지적 호기심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어떤 귀부인의 초상화는 끝끝내 거부했고, 주문자가 독촉한다고 해서 주문 받은 작품을 서둘러 끝내는 법이 없었다. 그는 채식주의자였으며 약자를 사랑하고 평화를 노래했지만 한편으론 강물을 막아 적군을 몰살시키자고 주장했고, 구매를 거절당한 다리의 설계도를 적군에게 팔았다. 기득권자들의 아귀다툼으로 북적대는 속세는 그에게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말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 마지막 여생을 보내기 위해 제자였던 살라이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로 떠나는 여행 보따리는 모나리자 그림과 그의 지적 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천 장의 노트 그리고 옷 몇 벌이 다였다. 그는 6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모나리자를 곁에 두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그가 평생 그리워한 엄마의 따스한 미소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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