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사무실에 들어서자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무실 좌우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화려한 표지의 다양한 책들이 가득 꽂혀 있다. 한켠에 있는 ‘셀프 트래블’ 시리즈가 눈에 익다. 자유여행자라면 한번쯤 서점에서 봤을 푸른색 표지의 책들이다. 런던, 파리, 방콕, 이스탄불 등 세계 유명 여행지들을 찾는 자유여행자들에게 요긴한 정보들이 책 곳곳에 가득하다. 여행전문 출판사인 상상출판의 사무실을 본 순간 서점의 여행전문 섹션에서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그래, 일단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책 한권 사들고 떠나는 거야!’

상상출판 유철상 대표.   ©중기이코노미

상상출판 유철상 대표(41)는 “여행전문 서적은 경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출판산업 매출이 30% 가량 줄었지만 여행 전문서적 매출은 소폭 상승했다고 한다. “여행이나 요리같은 실용서들은 다른 서적에 비해 목적구매가 분명하기 때문에 경기를 덜 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왜 ‘여행’이란 주제를 선택하게 됐을까? 우선 유 대표 스스로가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사찰여행 42’ ‘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 ‘서울여행 바이블’ 등 다수의 책을 썼다. 최근에는 2009년 발간한 ‘대한민국 럭셔리 여행지 50’의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출간을 목표로 에세이 한권도 쓰고 있다. 작가들은 보통 야행성이라고 하는데, 유 대표는 회사 경영을 하면서 저술활동도 하다 보니 주로 새벽에 집필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여행작가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문학회 활동이다. 문학소년이던 유 대표는 작가와 동행하는 향토문화연구회의 테마기행에 참여했다. “이때의 경험이 가장 많은 자양분이 됐다”고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를 비롯해 유명작가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문예창작을 전공해 대학원까지 마친 유 대표는 1997년 도서신문에 입사한다. 1999년 IMF의 여파로 회사가 부도나자 소설을 쓰기 위해 절에 들어가 6개월여를 보내기도 했다. “소설은 쓰기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못했다. 결국 한 편도 못썼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후 여행잡지를 거쳐 당시 중앙일보의 주간지 ‘프라이데이’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이 길을 걷게 됐다.

“당시에는 여행기자가 제일 한직이었어요. 지금은 연차가 오래된 기자들에게 전문기자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있지만, 불과 10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1.5세대 여행기자…여행전문 출판사를 차리다 

 

유 대표는 자신이 여행기자 1.5세대라고 평가했다. 1세대 선배들이 있었지만 여행매체가 부족해 아직 여행기자들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았던 시절 여행기자를 2~3년 먼저 시작한 것이 결국 여행작가를 거쳐 여행출판사까지 차리게 된 계기가 됐다.  

자유여행 중심으로 여행트렌드가 확고하게 잡혔다고 판단한 유철상 대표는 1년여 동안 다양한 여행서를 냈고 2010년부터는 독자적인 여행서 시리즈 ‘셀프 트래블’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기이코노미

여행전문잡지와 여행출판사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출판시장을 보는 눈을 키운 유 대표는 마침내 2009년 상상출판을 설립하고 독자사업에 나섰다.  

“출판사 편집장 시절 여행서 시리즈의 개정을 위해 문화부 자료와 신문기사 등 여행 트렌드 관련 데이터 3년치를 분석했어요. 그 과정에서 여행 트렌드와 여행출판의 방향을 감지했죠. 그 감이 있었기 때문에 상상출판을 차릴 수 있었어요”

자유여행 중심으로 여행트렌드가 확고하게 잡혔다고 판단한 유 대표는 1년여 동안 다양한 여행서를 냈고 2010년부터는 독자적인 여행서 시리즈 ‘셀프 트래블’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존의 여행시리즈에 비해 ‘셀프 트래블’의 장점은 심플하고 보기 편하다는 것”이다. 이후 다수의 여행서를 출간하면서 여행전문출판사로서의 입지를 키워나갔다.

전자책 전문브랜드 ‘상상플러스’ 설립

유 대표는 자신의 성공이 “기자생활을 한 덕분에 현장감이 있었고, 이 때문에 남보다 빨리 방향을 잡은 덕분”이라고 했다.

트렌드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유 대표는 출판계의 새로운 화두인 전자책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 상상출판에서도 전자책을 만들고 있으며, 전자책 전문 브랜드 ‘상상플러스’도 올 1월 설립했다.

“한국은 기기가 너무 다양해요. 미국은 아마존 킨들이 대표적이어서 표준화됐는데, 한국은 기기마다 크기 규격도 다르고 데이터 폼도 달라 어려움이 있어요”

2011년 이미 전자책을 준비했지만 왕성하게 전자책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새 전자책 시장에 뛰어든 출판사들도 대부분 기관납품 비중이 높은 수준일 뿐 시장이 외국처럼 성장하지는 못했다. “많은 출판사들이 데이터를 갖고 있었지만 굳이 전자책을 내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평가다. 유 대표도 다른 출판사와 마찬가지였지만 지난해 마음을 바꿔먹고 ‘상상플러스’라는 전자책 전문 브랜드를 낸다.

“어차피 장기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이윤을 만들고 시장을 형성하는 것은 어렵겠죠. 하지만 2~3년만 봐도 시장은 있다는 생각을 해요”

푸른 색 표지의 ‘셀프 트래블’ 시리즈를 비롯한 여행 관련 서적으로 빼곡한 상상출판 내부 전경.   ©중기이코노미

“정부에서 출판 창업하라는 건 현실 모르는 소리” 

여행출판에 대해 전문성이 있었던 유 대표는 그러나 막상 스스로 창업한 뒤에는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금규모에 대한 인식, 자금관리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또 판로확보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거의 매일 서점에 있었어요. 교보문고에서는 한 2년 동안 제가 사장인줄도 몰랐나 봐요. 매일 서점에 왔다 갔다 하는데, 한참 지나고 나서 (우리 회사 직원에게) ‘저 분이 사장이냐’고 물어봤다고 하더군요”

유 대표가 판로확보를 위해 서점을 집중적으로 다닐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출판업계에서 대형서점의 영향력이 유통업계에서의 백화점보다도 더 막강하기 때문이다. 책 하나를 광고하기 위해서는 대형서점에 자리를 1년 치, 6개월 치를 잡아둔 뒤 여러 책을 돌려서 홍보해야 하는데, 그 자리를 얻기가 너무 힘들다는 설명이다.

상상출판처럼 자리를 잡은 출판사에게도 어려움이 있다. 서점 측에서 요구하는 할인행사나 특별기획전 등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여행과 요리관련 서적은 30~50% 할인하지 않으면 순위에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할인이 보편화됐다는 점도 어려운 현실이다.

유 대표는 이 대목에서 “정부가 ‘출판사 창업이 도전해볼 만하다’고 한 얘기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에 새로 진입하기가 극히 힘든데 무턱대고 창업을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커피숍 하나를 해도 2억원을 써야 되는데 그 돈으로 출판사를 하나 만들 수 있다는 논리인데, 대형서점에 1인출판이나 신규출판사가 책을 넣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장관이나 관계자는 유통망에 대해 좀 더 알아본 뒤에 그런 소리를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새로 출판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점이나 유통망 쪽 사람들에게 상세한 얘기를 듣고 창업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건넸다.

유 대표는 “출판계는 아직 어음이 살아있고, 책이 팔린 뒤 수금이 되는 구조여서 자금 사정이 안 좋다. 정부가 강제로 규제할 수는 없지만 유통마진을 어느 정도로 할지에 대해 기준안을 잡아주면 좋겠다”며 “이런 합의가 이뤄지면 출판산업이 더욱 건전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소상공인 지원도 지금보다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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