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는 벌써 훈훈한 바람이 분다. 봄이 다도해를 징검다리 삼아 남녘땅에 발을 디뎠다는 소식이 전해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에서는 싱싱한 생명력이 전해진다. 그래서 이맘때쯤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들판에 앉아 새싹을 눈여겨보는 일도 제법 재밌는 소일거리가 된다. 

 



전남 완도읍에서 뱃길로 45분 거리인 청산도. 하늘, 바다, 산 모두가 푸르다고 해서 ‘청산(靑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섬이다.   ©상상출판

전남 완도읍에서 뱃길로 45분 거리인 청산도. 하늘, 바다, 산 모두가 푸르다고 해서 ‘청산(靑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섬이다. 자연경관이 유별나게 아름다워 옛날부터 청산여수(靑山麗水)라 불렀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청정지역으로 보존된 섬 곳곳에 산이 자리 잡고 사시사철 해송이 우거져 있다. 

 

들판에는 무릎까지 훌쩍 자란 보리가 푸른빛을 더한다. 지난해 10~11월에 파종한 보리는 3월 말이면 이삭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평지가 적은 이곳에선 보리밭이 계단처럼 이어지며 산비탈 위에 푸른 양탄자를 깐다. 밭이 끝나는 곳에는 이내 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돌담을 따라 솔숲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영화 ‘서편제’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길게 뻗은 황톳길을 따라 걸으면 ‘진도아리랑’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상상출판

보리밭과 돌담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광을 섬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상상출판

보리밭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광이 섬 내에서 특히 아름다운 곳은 당리마을. 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언덕길을 약 10분간 걸으면 오른쪽으로 넓은 밭 한가운데 소나무가 빼곡하게 서 있는 당리진터가 나온다. 돌담을 따라 솔숲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영화 ‘서편제’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영화 속 장면이 설명돼 있고 아랫마을에 있는 오두막집으로 안내하고 있다.  

 

영화에 나온 돌담길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돌담 사이의 길도 원래 황톳길이 아니었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시멘트 포장을 했던 것. 그것을 청산면에서 관광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복원 공사를 해 지금은 황톳길로 다시 남게 되었다. 길게 뻗은 황톳길을 따라 걸으면 ‘진도아리랑’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돌담길에서 200m쯤 내려가면 당리마을이 나온다. 당리의 유채밭은 드라마 ‘봄의 왈츠’의 촬영지다. 유채꽃과 청보리밭은 물론 주인공이 살았던 집이며 소나기를 피해 쉬었던 나무 아래 벤치도 보인다. 

당리의 유채밭은 드라마 ‘봄의 왈츠’의 촬영지다. 유채꽃과 청보리밭은 물론 주인공이 살았던 집이며 소나기를 피해 쉬었던 나무 아래 벤치도 보인다.   ©상상출판

청산도는 여느 관광지처럼 특별한 유적지나 떠들썩한 놀거리가 있는 곳이 아니다. 그저 예스러운 어촌 풍경이 고즈넉하게 펼쳐지는 시골 섬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잦지 않은, 섬 그대로의 풍경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청산도의 계단식 논은 모양도 구불구불, 시골길을 닮아 정겹다. 시골길은 또 물길을 닮았다.  

청용공원에서 가까운 읍리앞개 바닷가는 올망졸망한 돌이 해변을 차지한 갯돌밭이다. 햇빛이 나면 반짝여서 예쁘고 바람이 불면 ‘자글자글’ 돌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정겹다. 이곳 읍리앞개에도 우리민박, 앞개민박 등 몇 개의 민박이 있어서 밤에 자갈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다. 

 

청산도에는 돌이 많다. 집집을 둘러싼 담장, 논둑, 밭둑이 모두 돌로 돼 있다. 산지를 개간하면서 나온 돌들을 활용한 것이다. 산비탈에 널찍한 돌을 깔고 그 위에 15~20cm 흙을 덮어 만든 ‘구들장 논’도 산과 돌이 많은 이곳의 지형적 특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해발 300m가 넘는 산이 세 개나 되고 해발 150~300m대의 산이 열 개나 되는 청산도에는 화재 때문에 민둥민둥해진 산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올망졸망한 돌이 해변을 차지한 지리해수욕장. 햇빛이 나면 반짝여서 예쁘고 바람이 불면 ‘자글자글’ 돌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정겹다.   ©상상출판

청산도는 잠깐 머물다 가기에 알맞은 여행지는 아니다. 먼 길을 달려온 만큼 며칠은 섬에서 머무르며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 꼭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유자적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이다. 섬 전체를 한 바퀴 돌면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섬 둘레를 도는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다. 

 

하지만 걸어서 일주하는 것이 청산도를 제대로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혹은 혼자라도 좋다. 봄바람 맞으며 걷는 섬 트레킹은 분명 낭만으로 가득할 것이다.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대략 서너 시간이면 된다.  

 

사실 청산도 여행은 오고 가는 길에 시간을 많이 소비하게 된다. 일정을 빠듯하게 잡기보다는 넉넉하게 계획하는 것이 좋다. 하루 만에 섬 전체를 둘러보는 것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고 해도 청산도는 역시 구경하기보다는 머물고 싶은 곳이다.[유철상 상상출판 대표(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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