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각종 정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부설연구소 설립을 도와주겠다는, 이른바 ‘브로커’의 제안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정책자금 브로커와 기업부설연구소에 대한 기사를 쓰는 사람이 전화를 받을 줄은. 당시 마감 때문에 바빴던 터라 긴말 않고 전화를 마쳤다. 끊고 나니 비로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당수의 중소기업들이 이런 전화를 받고, 그 중 일부는 응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2009년부터 정책자금 브로커 신고센터를 만들고 단속 중이지만 여전히 브로커가 횡행하고 있다. 사전적인 정의는 없지만 정책자금 융자나 지원사업 성사를 도와주고 지원 받은 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취하는 이들을 흔히 브로커라고 부른다.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이들을 근절 대상으로 삼고 단속 중이지만 막상 제보가 접수돼도 처벌이 마땅치 않다. 기업 컨설팅 자체가 법에 어긋나지는 않는 탓이다. 일부 브로커들은 정부 관계자를 사칭하며 돈을 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명함에는 중기청이나 중진공 로고를 넣고, 업체명은 공공기관과 비슷하게 지어 오해를 하게끔 만든다. 그런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소속이 어디냐”, “회사 홈페이지 한번 보자”고만 물어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진공 관계자의 말이다. 

브로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들의 속내를 모르는 것만도 아니다. 지원 사업에 선정 되려면 해당 업종의 시장 상황, 기술 동향 등이 포함된 ‘그럴듯한’ 사업계획서를 써야 하는데 신생기업들에게는 쉽지 않은 탓이다. 그래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기업 스스로도 지원서를 쓸 수 있다는 게 사업 담당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매년 중기청이 발행하고 있는 ‘중소기업 기술로드맵’ 등 공공의 자료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업계획서 작성 경험은 경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 우리 회사의 위치를 가늠하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중소기업도 브로커 없이 정책자금을 신청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정부도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신청 서류를 간소화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정책자금의 본질은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것이다. 손쉽게 정책자금을 타보려다 수수료로 더 큰 비용을 부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