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소기업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다. A씨는 지난해 10월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 행사때를 떠올리면서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그는 “판매수수료는 단 10원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납품단가를 낮출 것만을 강요했다”고 한다. 중소레미콘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대기업들의 갑질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재작년 하반기부터 유연탄·유류비 등 원자재가 대폭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멘트 가격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예 중소레미콘업체들의 시멘트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는 “정부에서는 동반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간의 정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라는 게 헛구호라는 비아냥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관계 마저 ‘갑을관계’로 치환되는 세상에, 대·중소기업들 사이에서 갑을이라는 종속적 관계는 현실이다. 이같은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그 누구보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해 왔던 박근혜 대통령은 2년전부터 ‘민주화’를 쏙 빼고 그 자리에 ‘활성화’니 ‘부흥’이니 ‘재도약’이라는 단어들로 대신 채웠다. 중소기업인들이 대한민국에서 경제활동 하기란 참 어렵다는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주영섭 신임 중소기업청장이 지난 20일 취임식을 가졌다. 대기업 출신으로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자리를 의식해서인지 주 청장은 “(취임 직전) 서울대 산학협력추진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대학과 중소기업간 협력을 이끈 바가 있다”고 강조한 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은 배려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략”이라고 밝혔다. 동반성장은 시대의 요청에 의해 나온 경제철학이자 국가전략이다. 이러한 점에서 주 청장의 정책 방향성과 인식에 대해 공감한다. 산업현장에 직접 몸 담았던 사실 만으로도, 정통경제관료 출신과는 조금 다른 해법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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